문재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6일 현충일)이 정치권을 뒤흔든 가운데, 정치권에선 이를 “대통령의 계산된 발언”으로 보는 분석이 나온다. 3·1절 기념사의 ‘빨갱이’ 언급부터 이어진 일련의 문 대통령 메시지가 결국 ‘국가 정체성 재정립’을 추진하려는 시도라는 관측이다. 이번 논란의 주요 쟁점을 정리했다.
야당 “서훈 주려는 계산된 작전” #청와대 “대통령 말과 서훈은 별개” #학계 “현행법으론 수여 힘들어” #일각 “경제 실정론 덮으려 발언”
◆문 대통령은 김원봉 서훈을 추진하나=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은 8일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의 이번 현충일 추념사는 고도로 기획된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 수여를 위한 작전”이라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직접 김원봉 서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 청와대 관계자도 7일 “어제(현충일) 말씀 취지와 서훈 문제는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2015년 8월 당시 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고 쓴 적이 있다. 이런 문 대통령의 인식이 보훈처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있다. 국가보훈처 자문기구인 ‘국민중심보훈혁신위’는 지난 2월 김원봉에 대한 서훈을 제안했지만, 당시 야권의 반발로 무산됐다. 하지만 피우진 보훈처장은 여전히 여지를 남겨둔 상태다.
◆현행법상 서훈은 가능한가=상훈법 제11조에 따르면 ‘건국 훈장’은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한다”고 돼 있는데, 김원봉은 남한이 아닌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학계에선 “현행법상 서훈 수여는 힘들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심사기준을 개정하면 가능하다.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도 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서훈 제외 조항인 ‘공산주의자’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적으로 한 활동에 주력했거나 적극적으로 동조한 자’로 완화해 그해 3·1절에 여운형 등 54명에게 훈·포장을 수여했다. 이번에도 문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민병두 정무위원장이 상훈법 개정 추진 의사를 밝혔다.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고 했나=현충일 발언에 대해 자유한국당에선 “김원봉을 ‘국군 창설의 뿌리’라고 한 것은 역사 조작이자 6·25전쟁 희생자를 모독하는 망언”(김태흠 의원)이란 격렬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며 “통합된 광복군 대원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이 광복 후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고 한 것이지 김원봉이 국군의 뿌리라고 했다는 건 논리적 비약”이라고 반박한다.
◆김원봉 논쟁은 계산된 프레임 전환?=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경제 실정론으로 수세에 몰리자, 여야 역사 논쟁으로 이슈를 덮으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청와대는 경제 실정 다툼보다는 역사 전쟁을 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좌우의 소모적 논란을 끝내자는 의도였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