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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두고 또 등장한 ‘현금성 복지’ 정책…선거용 퍼주기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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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저소득 구직자 등에게 월 5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현금성 복지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총선을 10개월여 앞둔 시점이어서 선심성 퍼주기 논란이 거세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이 4일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국민취업지원제도 추진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이 4일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국민취업지원제도 추진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4일 서울 고용노동청에서 당정협의회를 열고 내년 7월에 ‘국민취업지원제도’를 도입하기로 의결했다. 중위소득 50%(4인 가구 기준 230만6768원) 이하의 취업 취약계층 중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저소득 구직자, 폐업 자영업자 등에게 월 50만원씩 ‘구직촉진수당’을 6개월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또 차상위 이하 소득의 지원 대상자가 취업에 성공하면 최대 150만원의 ‘취업 성공수당’도 지급하기로 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인 ‘한국형 실업부조’를 제도화한 것으로, 정부는 제도의 근거가 될 ‘구직자 취업촉진 및 생활안정지원에 관한 법률(안)’도 입법 예고했다. 내년 예산은 5040억원, 2022년엔 1조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의결을 마친 후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빈곤에서 벗어날 기회를 제공 받지 못하는 국민이 있다. 반복적 실업으로 생존에 위협을 받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와 국가의 책무”라고 평가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도 “1995년 고용보험이 시행된 이후 20여년 만에 큰 틀에서 고용 안전망 제도를 완성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야권은 격렬히 반발했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가입자들이 쌓아 둔 기금을 재원이지만, 이 구직수당 제도는 전액 세금으로 재원을 충당하기 때문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연석회의에서 “한국형 실업부조는 고용위기의 본질을 외면한 땜질식 처방이다. 실패한 정책을 수정하지 않고 돈과 세금으로 덮겠다는 게 정부 기본 원칙이자 방안이다. 돈을 퍼주는 정책을 한국당이 끝까지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이날 당 최고위에서 “현재 얼어붙은 고용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실업부조를 쏟아붓는다고 과연 폐업한 영세 자영업자들이 새로운 직장을 구해서 새 출발을 할 수 있겠나. 잘못하면 한쪽에선 자영업 줄도산으로 실업자를 양산하고, 한쪽에선 밑도 끝도 없이 구직수당을 퍼붓는 최저임금 인상과 일자리 안정기금의 비극을 재현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야권이 강력히 반대하는 것은 재정 지출 확대로 미래 세대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인식에 더해, 정부ㆍ여당이 ‘현금 살포’로 총선 승리를 거두려 한다는 의심이 깔려있다. 실제로 야권은 올해 들어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현금성 복지 지출을 늘리자 “선심성 예산으로 대권 포석을 마련하려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서울시는 올해 상반기부터 구직 중인 미취업자 등 청년 5000여명을 선발해 월 50만원씩 6개월간 ‘청년수당’(연간 예산 180억원 규모)을 지급 중이고, 경기도 역시 지난 3월부터 만24세가 되는 청년(도내 3년 이상 거주)을 대상으로 연간 100만원 지역 화폐(연간 예산 1700억원 규모)를 지급하고 있다.

한국당 김현아 원내대변인은 “내년 총선까지 10개월도 더 남았는데, 벌써부터 국민 돈으로 총선에 올인하는 뻔뻔한 집권여당이다. 현금 살포가 지나간 자리에 풀 한 포기조차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논평했다.

현금성 복지 지출의 정책적 효용성에 대해서도 학계 의견은 엇갈린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취업률이 늘고 실업률이 떨어지는 경기 선순환 상태라면, 현금성 복지가 내수 활성화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경기가 그렇지 않다. 또 폐업한 자영업자들이 왜 생겼나. 정부의 무리한 정책 강행으로 인한 실패 결과물 아닌가. 이를 다시 세금으로 막겠다는 것이니 적어도 정부가 정책 실패에 대한 유감 정도는 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현금성 복지가 필요하다는 쪽에선 “사회안전망 강화”를 주장한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고, 고용 없는 성장이 나타나고 있다. 큰 틀에서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방안은 성장 잠재력 하락 방지를 위해 필요한 면이 있고, 이를 시장에 빠르게 도입하려면 현금성 복지 지출의 긍정적인 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직수당 제도는 정부와 구직자 사이의 ‘상호의무’가 원칙이다. 구직자가 지원을 받으려면 정부가 시행하는 직업훈련 등에 참여하는 등 구체적 구직 활동을 해야한다. 전문가들은 상호의무 규정이 얼마큼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가 구직수당 제도의 성패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여야의 온도 차가 큰 만큼 이번 정부 안이 국회에서 원안대로 통과될지도 불투명하다. 한국당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40% 이하로 유지하는 내용의 재정건전화법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등 청와대 재정 지출 확대 기조에 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김준영ㆍ임성빈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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