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800만 달러 첫 대북 인도적 지원···쌀도 추진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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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북한의 취약계층을 돕는 국제기구의 사업에 800만 달러(94억여원)를 지원하게 됐다. 사진은세계식량기구(WFP)의 북한 사업 관련 홈페이지. [연합뉴스]

정부가 북한의 취약계층을 돕는 국제기구의 사업에 800만 달러(94억여원)를 지원하게 됐다. 사진은세계식량기구(WFP)의 북한 사업 관련 홈페이지. [연합뉴스]

정부가 5일 북한 영유아와 임산부 등 취약계층을 돕는 국제기구 사업에 800만 달러(약 94억4000만원)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규모로 집행되는 첫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이다.
통일부는 이날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열고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 영양지원 사업과 유니세프의 북한 모자보건 사업에 남북협력기금에서 총 800만 달러를 무상 지원하는 방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유엔 세계식량계획, 유니세프에 남북협력기금 800만 달러 무상 지원 #대북 쌀 식량지원도 검토 중

이번 지원액 중 450만 달러는 WFP의 북한 영양지원 사업에 투입된다. WFP는 북한 내 9개도 60개 군의 탁아소·보육원·소아병동 등이 관리하는 영유아·임산부·수유부에게 영양강화 식품을 나눠준다. 나머지 350만 달러는 유니세프에 지원되며, 북한 아동·임산부·수유부에게 치료식과 기초 필수의약품 키트, 미량영양소 복합제 등을 제공하는 데 사용된다. WFP와 유니세프는 정부로부터 받은 800만 달러로 필요 원재료 등을 구입한 뒤 북한에 식량을 배분하는 식이다. 옥수수, 콩, 오일, 비타민 등의 영양소를 섞어 만든 가루 형태를 나눠준다고 한다.

통일부는 17일 보도자료에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해 나간다는 입장 하에 우선 세계식량계획(WFP), 유니세프(UNICEF)의 북한 아동, 임산부 영양지원 및 모자보건 사업 등 국제기구 대북지원 사업에 자금(800만불) 공여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통일부는 17일 보도자료에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해 나간다는 입장 하에 우선 세계식량계획(WFP), 유니세프(UNICEF)의 북한 아동, 임산부 영양지원 및 모자보건 사업 등 국제기구 대북지원 사업에 자금(800만불) 공여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지원 사업에 남북협력기금을 투입한 것은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6년 8월 이후 2년 10개월 만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국제 비영리기구(NGO)의 북한 농업개발 식수위생 지원 사업에 1억원을 지원했다. 앞서 그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1억원 지원밖에 되지 않았지만, 박근혜 정부 기간인 2013~2016년 총 392억원이 집행됐다.
사실 이번 800만 달러 지원 건은 문재인 정부 들어 2017년 9월 교추협을 통해 이미 한 차례 결정했던 사안이었다. 그러나 당시 북한 6차 핵실험(9월), 미사일 발사 등 잇따른 도발로 실제 집행은 무기한 미뤄졌다. 특히 미국 등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험악해지며 정부도 “지원 시기와 규모는 전반적인 여건을 고려하면서 추진하겠다”는 방침으로 돌아섰고, 이런 기조는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행돼온 올초까지 변함없었다.

그러다 정부는 지난달부터 800만 달러 지원 건을 본격적으로 검토했다고 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WFP가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긴급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전화통화에서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 필요성에 공감한 게 결정적 배경이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7일 오후 35분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북한이 지난 4일 쏘아올린 발사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이후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7일 오후 35분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북한이 지난 4일 쏘아올린 발사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이후 한반도 비핵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연합뉴스]

정부는 지원의 긴급성에 따라 이번 800만 달러 지급 실무 절차를 서두를 방침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국제기구에 집행 결정 사실을 통보하고 국제기구로부터 필요한 계좌를 수령해 입금하게 된다”며 “국제기구와 협의해야 하는데 통상 3∼4일(업무일 기준) 걸리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르면 이번주 안에 두 국제기구에 ‘송금’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 당국자는 “WFP, 유니세프가 필요 물품을 구입해 북한에 물자가 조달되기까진 한 두 달가량이 더 소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이번 지원과 별도로 쌀로 대표되는 대북 식량지원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으로 국내 반발 여론이 부담이다. 또 쌀 식량지원이 북한 취약계층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에 대한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의구심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대북 식량지원과 관련해 한달 넘게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 중이다. 통상 정부의 쌀 식량지원의 경우 과거 전례로 볼 때 대부분 육로를 통한 직접 지원 형태로 이뤄졌는데, 이번에는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 지원 방식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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