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채권은행, 대기업 구조조정 권한 세진다...사업계획 연계 체질개선도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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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의 기업 구조조정 틀이 10년 만에 바뀐다. ‘빚 많은 기업’을 선정할 때는 시장성 차입을 들여다본다. 또 해외법인 성과도 기업의 재무구조 평가에 포함된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9년 주채무계열 선정 결과 및 주채무계열제도 개선 방안’에 따르면 올해 주채무계열로 선정된 대기업 그룹은 현대자동차ㆍ삼성ㆍSK 등 30곳이다. 지난해보다 1개 줄었다.

주채무계열은 은행ㆍ보험 등 금융사에서 빌린 돈이 전체 신용공여액의 0.075% 이상인 기업을 선정한다. 이후 재무구조 평가가 나쁘면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한다. 부실을 막기 위한 채권단의 선제적 구조조정이다.

연도별 주채무계열 선정결과

연도별 주채무계열 선정결과

올해 주채무계열 선정 기준인 신용공여액은 1조5745억원으로 지난해(1조5166억원)보다 579억원(3.8%) 늘었다. 동원과 현대상선이 신규 편입됐고, 한국타이어, 장금상선, 한진중공업은 제외됐다. 한국타이어와 장금상선 계열은 차입금을 갚으며 이번 평가에서 빠졌고, 한진중공업은 채권단 출자전환에 따른 계열 분리로 신용공여액이 줄어든 까닭이다.

자료: 금융감독원

자료: 금융감독원

내년부터 기업 재무구조 평가 기준이 더욱 깐깐해진다. 금감원과 은행권이 지난해부터 테스크포스(TF)를 운영해 10년 만에 개선안을 마련했다. 자금조달 다변화, 해외진출 확대 등 기업의 경영 환경이 바뀐 점을 반영했다.

먼저 시장성 차입도 주채무계열 선정기준에 넣는다. '제2의 아시아나항공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은행 빚만 따져서는 회사채, 기업어음(CP) 등 시장성 차입에 따른 부실을 포착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신용공여액(0.075% 이상)은 물론 총차입금이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0.1% 이상이면 ‘빚 많은 기업’으로 묶일 수 있다.

해외사업 위험도 평가한다. 주채무계열 재무구조를 평가할 때 국내 계열사 별도재무제표 대신 국내외 계열사를 볼 수 있는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바꾼다. 조성민 금감원 신용감독국장은 “대기업의 해외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해외 법인 수가 국내보다 3배 가까이 많아졌다”며 “앞으로 재무구조를 평가할 때는 해외계열사의 재무구조와 영업실적도 반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업 구조조정 원칙도 바뀐다. 기업의 중ㆍ장기 사업계획을 반영한 실질적인 재무구조 개선을 약정한다. 단순히 부채비율만 낮춰서는 대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은 어렵다고 본 것이다. 대신 장기간 재무구조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컨설팅ㆍ외부실사ㆍ경영진 면담 등을 채권단이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개선안은 올해 하반기 감독규정을 개정한 뒤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조성민 국장은 “바뀐 제도가 시장에 안착하면 대기업의 리스크 관리 능력은 물론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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