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막말·혐오 대신 자유한국당의 대안을 듣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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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마치 ‘막말 바이러스’에라도 감염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주요 당직자들이 돌아가면서 이런 막말을 쏟아내진 못할 것이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보다 낫다” 하고 #헝가리 참사엔 “골든타임 3분뿐” #지지율 확장 스스로 차단하는 제1 야당

자유한국당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31일 국회의원·당협위원장이 모인 연석회의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야만성에는 몸서리가 쳐지지만, 그런 야만성·불법성·비인간성을 뺀다면 문재인 대통령보다 지도자로서 더 나은 면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보다 ‘김정은 우위설’을 주장하면서 든 이유가 어처구니없다. 그는 김 위원장의 ‘김혁철(북 국무위 대미특별대표) 처형설’을 거론하며 ‘신상필벌’이라고 규정한 뒤, 우리 외교·안보 진용을 감싸면서 경질하지 않고 있는 문 대통령보다 신상필벌을 하는 김 위원장이 낫다고 했다. 아직 사실 확인도 안 된 내용을 사실로 전제한 것부터가 잘못이지만, 설령 외교관을 ‘처형’한 게 사실이라면, 그것이 어찌 신상필벌이며 문 대통령보다 나은 면이라고 할 수 있는가. 툭하면 ‘김정은’을 끌어내 문 대통령을 비난하곤 했던 한국당이 급기야 ‘김정은 치켜세우기’라는 무리수로까지 비약한 것이다.

이날 민경욱 대변인은 자기 페이스북에 “일반인들이 차가운 강물 속에 빠졌을 때 이른바 골든타임은 기껏해야 3분”이란 글을 올렸다.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직후 “가용할 수 있는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헝가리 측과 협력하라.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속도”라고 지시한 문 대통령을 겨냥한 글이다. 도대체 민 대변인이 하고픈 말은 무엇인가. 대형 재난의 순간, 다 끝난 참사이니 정부와 대통령은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한국당은 근래 상습적인 막말로 스스로 지지율을 깎아먹었다. “5·18 유공자는 괴물집단”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지난 2월, 5·18 망언), “세월호 유족들 징하게 해먹는다”(4월, 세월호 망언), ‘달창’ 발언(5월, 문 대통령 지지자 폄훼 발언) 등 월례 행사 수준이다. 얼마 전 강효상 의원이 한·미 정상의 통화 내용을 비정상적 방법으로 입수한 뒤 ‘구걸 외교’라고 비난, 역풍을 맞은 사건도 ‘말’이 빚은 구설이란 점에서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갤럽이 지난주 발표한 정당지지율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39%, 한국당은 22%였다. 한때 턱밑까지 민주당을 추월하더니만 다시 17%포인트 차로 벌어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막말 한마디에 중간층의 마음은 얼마나 멀어지고, 중도 확장성은 얼마나 요원해지는지 깨닫기 바란다.

야당의 존재 이유는 물론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다.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직무유기일 수 있다. 하지만 비판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 ‘김정은이 더 낫다’는 식이 아니라 사실관계에 따라 품격 있는 언어로, 대안을 제시하면서 말이다.

황교안 대표는 최근 ‘민생투쟁 대장정’을 마친 자리에서 “(민생) 현장은 지옥과 같았다”고 했다. ‘지옥’이란 말마저 논란을 부르긴 했지만, 민생 현장이 매우 절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당이 지금까지 민생을 위해 내놓은 새로운 정책은 무엇이 있나. 대안 있는 비판은 또한 얼마나 있는가.

황 대표 말마나따 절박한 처지에 놓인 이들이 듣고 싶은 것이 과연 혐오를 부르는 막말이겠는가, 아니면 미래의 민생 대안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