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책 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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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파친코

파친코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 이민진 소설 『파친코』중에서.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이다. 아마도 『파친코』는 첫 문장으로 가장 유명한 소설, 또는 첫 문장에 전체가 깃든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1910년 경술국치에서 1989년까지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4대에 걸친 재일한국인 가족의 삶의 궤적을 쫓는다.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가 영어로 썼다.

2017년 뉴욕타임스·USA투데이·BBC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뽑혔고,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첫 문장부터 당신을 사로잡는다”며 책을 추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달 초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석한 한국관 작가들의 작품명도 바로 이 문장이었다. 두 권짜리 소설은 “선자는 가방을 집어 들었다. 경희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로 끝난다. 비록 역사가 망쳐놔도 지속되는 삶에 대한 담담한 경의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