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쓰레기산 세금 들여 치워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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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천권필 환경팀 기자

천권필 환경팀 기자

전국에는 235개의 ‘인공 산(山)’이 있다. 쓰레기 산이다. 누군가 불법으로 쌓은 것이다. 전국적으로 방치된 불법 폐기물은 환경부가 확인한 것만 120만t이 넘는다. 업계에서는 200만t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환경부는 올해 안에 모든 불법 폐기물을 치우겠다면서 5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배정했다. 불법 쓰레기를 세금으로 치우는 셈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처리장에서는 “왜 남의 동네 불법 쓰레기까지 처리해야 하느냐”며 안 받겠다고 버티고 있다. 민간 소각장을 이용할 경우엔 처리 비용이 1500억 원까지 불어난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발생 자체를 줄이거나, 재활용률을 높여야 한다. 이마저도 안 되면 소각이나 매립 처리가 잘되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이 모든 단계가 삐걱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폐기물 정책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최근 기자와 만난 환경부의 한 간부는 “이제는 정말 쓰레기가 목구멍까지 차 있는 상태다.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급한 대로 돌려막으면서 버티고 있다”고 토로했다. 입구로 들어오는 쓰레기는 점점 늘어만 가는데 출구는 줄줄이 막혀 있다는 것이다.

먼저, 쓰레기 발생량은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2010년 하루 37만t이었던 폐기물 발생량은 2016년 43만t으로 14.5%가량 증가했다. 반면 쓰레기 처리의 최종 단계를 맡은 매립과 소각은 사실상 포화 상태다. 정부의 직매립 금지 정책에도 불구하고 매립지는 점점 수명을 다하고 있고, 소각장은 주민들 반대로 신·증설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소각 처리 비용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한 재활용 업체 대표는 “정부의 폐기물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막대한 세금을 들여 불법 폐기물을 치운다 해도 또다시 어딘가에 쓰레기 산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재활용 시장도 꽉꽉 막혀있다. 특히, 폐비닐과 생활 쓰레기 등을 SRF(고형연료)로 재활용하는 이른바 ‘쓰레기 발전소’가 줄줄이 표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일관성 없는 SRF 정책이 최근 쓰레기 대란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유럽과 일본에서 먼저 시행한 SRF 정책은 노무현 정부였던 2003년에 국내에 처음 도입됐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각종 혜택을 받아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환경부는 SRF를 사실상 ‘적폐’, ‘미세먼지 주범’으로 규정하고 규제를 강화했다. 결국 전국 곳곳에서 추진됐던 쓰레기 발전소는 신뢰를 잃었다. 사업 자체가 중단되거나, 건설된 것조차도 주민과 갈등으로 인해 가동을 못 하고 있다.

쓰레기 산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폐기물 처리 인프라를 확대해야 한다. 우선 기피 시설인 폐기물 처리장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직접 주민을 설득에 나서야 한다. 폐기물 처리에서 나오는 이익을 주민과 공유하는 외국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아울러 불법 폐기물에 대한 처벌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불법 투기로 얻는 경제적 이익이 처벌받는 것보다 수십 배 크기 때문에 불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근본적으로는 쓰레기 발생 자체를 줄이는 강력한 감축 정책과 확실한 기술이 마련돼야 한다. 결국 쓰레기 산을 만드는 건 우리이기 때문이다.

천권필 환경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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