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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찰, 민원인에 100만원 받은 혐의 경찰관 형사입건

중앙일보

입력

민원인에게 사례비 명목으로 1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는 대구경찰청 소속 경찰관이 형사 입건됐다.

주차 시비로 출동한 경찰관이 사건 마무리 후 연락 #민원인 "경찰이 '인사치레 해야 하지 않느냐' 했다" #A 경위 "당시 조끼 아래 100만원 넣은지 몰랐다"

28일 대구경찰청은 강북경찰서 한 지구대 소속 A (51)경위를 뇌물수수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신고를 접수한 뒤 A 경위를 직위 해제했다.

발단은 21일 오전 2시쯤 벌어진 이웃 간의 주차 관련 시비가 경찰에 접수되면서다. 태전동 한 빌라 주인 B씨가 자신의 차량을 주차하기 위해 건물로 들어서던 중 진입로를 가로막고 주차한 차량을 발견했다. B씨는 차주에게 전화를 걸어 차량을 빼 달라고 요구하다 시비가 붙었다.

결국 B씨와 이웃은 욕설과 함께 말다툼했고 이윽고 경찰이 출동했다. 여기에 A 경위가 포함돼 있었다. 약 30분 뒤 흥분을 가라앉힌 B씨와 이웃이 화해했고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B씨의 개인 휴대전화로 A 경위가 같은 날 새벽 전화를 걸어 “B씨의 차 안에 음주측정기를 두고 왔다”며 B씨의 집으로 다시 찾아왔다고 한다.

B씨는 “음주측정기를 챙긴 A 경위가 다가와 ‘인사치레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며 “사례비를 요구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집에서 현금 100만원을 들고 와 경찰의 조끼 안주머니에 넣었는데 ‘고맙다’고 말하고 떠났다”고 주장했다. 집에 현금 100만원이 있었던 이유에 대해선 “사업 때문에 다음날 물건을 살 게 많아 미리 뽑아둔 돈이었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흘러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 B씨는 같은 날 오전 3시40분쯤 112에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신고했다.

경찰 조사에서 A 경위는 “B씨가 조끼에 현금 100만원을 넣은 사실을 당시에는 인식하지 못했다”며 “나중에 B씨가 112 신고를 한 것을 알고 돌려주려고 했는데 만나지 못해 B씨의 차량 밑에 돈을 놓고 나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경찰청. 대구=김정석기자

대구경찰청. 대구=김정석기자

그러나 경찰은 현장 폐쇄회로TV(CCTV)와 주변 자료를 검토한 결과 A 경위에게 뇌물수수 혐의가 있다고 보고 형사 입건했다.

중앙일보가 단독 입수한 CCTV엔 해당 경찰관이 민원인으로부터 뭔가를 받아 돌아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혔다. 빌라 건물 1층 복도에서 민원인이 경찰관에게 다가가 조끼 아래로 주먹만 한 크기의 물체를 집어넣고, 경찰관은 그대로 돌아서서 민원인과 함께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는 장면이다. 그 과정에서 경찰관은 시종일관 휴대전화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112에 “A 경위에게 현금을 줬다”고 신고했는데 막상 출동한 경찰이 A 경위였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B씨는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는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황당하게도 A 경위였다. 어떻게 A 경위가 왔는지 알 수 없으나 황당했다. A 경위가 ‘좋게 넘어가자’는 취지로 설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A 경위가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벨을 눌렀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A 경위가 B씨의 빌라 건물 출입구에서 벨을 누르고 서성이는 장면도 인터폰 화면에 찍혔다.

21일 오전 대구 북구 태전동 한 빌라 건물 앞에서 대구 강북경찰서 한 지구대 소속 A 경위가 민원인 B씨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벨을 누르고 있는 모습이 인터폰 화면에 찍혀 있다. [사진 독자]

21일 오전 대구 북구 태전동 한 빌라 건물 앞에서 대구 강북경찰서 한 지구대 소속 A 경위가 민원인 B씨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벨을 누르고 있는 모습이 인터폰 화면에 찍혀 있다. [사진 독자]

오전 9시쯤 가족들과 함께 볼일을 보러 나선 B씨. B씨의 아들이 차량 조수석 쪽 바퀴 아래에 현금 뭉치 100만원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A 경위가 받은 돈을 아무 말 없이 그대로 그곳에 놓아두고 간 것으로 B씨는 보고 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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