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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산림청 직원들이 밤꽃을 기다리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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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박종호 산림청 차장

박종호 산림청 차장

탐스러운 아까시 꽃이 만발하여 바람결에 실려 오는 달콤한 향기가 온산을 뒤덮는다. 아까시 꽃이 풍기는 꽃내음은 산림공무원들의 마음에 봄바람을 일으킨다. 아까시 꽃이 만개하는 바로 이맘때 산림공무원들은 산불 비상근무체제에서 평상 근무체제로 돌아간다. 겨우내 말랐던 나뭇가지에는 물이 오르고 낙엽은 새 풀잎으로 덮여 더는 산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산불로부터 국민과 산림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안고 사는 산림공무원들이 유독 아까시 꽃을 더 반기는 이유다.

산림공무원에게 산불 비상근무는 숙명이다. 산불 조심 기간이 되면 평생을 바쳐 가꾼 숲이 한순간 재가 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휴일도 반납하고 산불예방과 진화에 온 힘을 쏟는다. 산불예방 캠페인, 논밭두렁 태우기 금지, 산불 진화 훈련 등 쉴 새 없는 강행군을 이어 간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무색하리만큼 올봄은 산림공무원에게 유독 잔인했다.

지난 4월 4일에는 강원도 5개 시·군에서 대형산불이 발생했다. 범정부 차원에서산림 헬기 등 가용자원을 총 투입해 다행히 이틀 만에 진화했다. 2000년 강원도 동해안에서 발생한 산불을 9일 만에 진화한 것에 비하면 굉장히 빠른 편이다.

이런 배경에는 산림항공본부의 산림 헬기 조종사와 정비사분들의 노고가 숨어있다. 이번 강원 산불에서도 연초부터 계속되는 출동으로 누적된 피로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진화작업을 벌였다. 산림 헬기는 강풍·연기와 싸우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많아 안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작년 12월에는 산불 진화를 위해 한강에서 담수 중이던 산림 헬기가 추락하여 소중한 동료를 잃었다.

아까시 꽃봉오리가 올라오는 5월이 되었지만, 산불은 연일 계속되었다. 중앙산림재난상황실에서 근무 중이던 직원이 순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16건의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날이었다.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산림공무원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애통하다.

아까시 꽃이 만발했다고 산불 발생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밤꽃이 피는 6월은 되어야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수 없다.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겨울 산불은 점점 증가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밤꽃이 피길 기다리는 것도 무의미해지는 때가 올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느덧 밤꽃이 피는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반가운 단비가 내려 메말랐던 땅을 촉촉이 적시고, 봄철 산불로 지친 산림공무원의 몸과 마음도 달래주길 바라본다.

박종호 산림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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