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연내 북·미 3차회담” 트럼프 재선 거론하며 협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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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 내년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을 재개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방해할 수 있다는 북한식 협박이다.

회담 불발 땐 ICBM 발사재개 시사 #“대북 성과 수포로 돌릴 수 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8일 “제시된 시한부를 지키지 못하면 그(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걸린 선거를 앞두고 대조선 외교에서 거둔 성과를 수포로 돌릴 수 있다”며 “올해 안으로 3차 수뇌회담이 열리지 않을 경우 핵시험, ICBM 시험 발사와 관련한 하노이의 약속이 유지될지 어떨지 예단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더 이상 제재 해제에 매달리지 않을 것”이라며 “연말까지 미국의 입장 변화를 기다려 보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연말을 ‘시한부’로 설정한 데 대해선 구체적으로 나온 설명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조선신보는 연말 이후, 즉 내년에 무슨 일이 있을지에 대해 핵 실험, ICBM 시험 재개 카드를 공개한 것이다.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화성-15형 미사일( ICBM급)을 발사한 이후 지난해 북·미 비핵화 협상이 시작되자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을 중단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치적’으로 꼽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에서도 핵·미사일 시험 중단을 약속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밝힌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내년 미국 대선’ 카드를 들고나온 것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자신들이 요구해온 제재 해제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미국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단 조선신보는 북한의 공식 발표인 국무위원회·외무성 담화나 당의 공식 입장인 노동신문(노동당 기관지)의 보도보다는 격이 떨어진다. 북한은 지금까지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긴밀한 관계를 내세워 왔던 만큼 해외의 선전매체인 조선신보를 통해 ‘재선 악영향’ 카드를 꺼내 들어 수위를 조절했다. 진희관 인제대 교수는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등 관영 매체를 통해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가 여전히 좋다고 주장해 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관영 매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지 못하자 조선신보를 통해 미국의 태도 변화를 주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선신보는 “핵협상의 중단과 장기화는 미국 본토에 대한 보복 능력을 갖춘 핵보유국으로서의 조선의 지위를 국제사회에서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낼 뿐”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신보는 “대미 협상의 일관한 목적은 미국의 적대시정책 철페(철폐)와 핵전쟁 위협 제거”라며 협상 의제도 한 단계 높였다. 지난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때는 영변 핵시설 폐기 대 부분적 대북 제재 완화를 목표로 나섰는데 앞으로는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 대 북한 체제의 완전한 보장으로 협상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생각하는 체제 보장은 한·미 연합훈련 전면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라며 “이는 한·미가 수용하기 어려운 문제로 북한이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판을 키워 압박에 나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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