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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황희정승의 아들이 주색에 빠져 헤어나질 못했다. 아버지의 엄한 질책과 간곡한 당부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집을 비우기 예사였다. 며칠만에 아들이 돌아온다는 전갈을 받은 아버지는 의관을 정제하고 문밖으로 나가 아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깜짝 놀란 아들이 황공해하며 그 까닭을 물었다. 아버지가 대답하기를 『아비 말을 듣지 않으니 어찌 내 집 사람인가? 나그네가 집을 찾으니 어찌 주인이 인사를 차리지 않겠는가?』
「인연의 가지 끝에 열린 과일, 아들이여!」를 외친 김관식 시인처럼 자식들 때문에 인고의 나날을 보내는 아버지의 숫자가 늘어가고 있다. 이젠 의식주의 문제가 아니다. 아들 딸이 너무 똑똑해 겪는 신종 아버지병이 요즘 시대 만연하고 있다.
평양에 간 임수경양의 아버지와 수배 중인 아들 전문환군을 찾아 나선 경찰 아버지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 호소한 또 한사람의 아버지, 출판계의 원로 한만년씨의 호소문(국민일보 7월20일자)은 만천하 아버지의 가슴을 치게 한다.
아버지는 아들 넷을 두었다. 학식과 덕망있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들 넷은 모두 똑똑하고 예의발랐다. 아들 셋은 약간의 문제는 있었지만 그런대로 갈 넘어갔다. 정작 문제는 막내였다. 사학과를 선택한 막내는 이미 대학시절 지하서클에 부지런히 다니더니 군복무도 일찍 마치는 부령학생이 되었다. 용케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원해 이젠 마음 잡았거니 생각했다.
불과 얼마 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화가 치미는 일이 일어났다. 얌전한 역사학도라고 믿었던 막내는 「현대사 연구가」라는 희한한 신분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정색하고 마주앉은 부자 토론에서 부모가 겪은 6·25, 김일성에게 품은 증오와 경계, 전쟁의 공포등을 아들은 낡은 세대의 상투적 잔소리로 몰아 붙였다.
아버지는 몇 날 며칠의 궁리 끝에 자신의 미련함을 스스로 깨닫게끔 툴툴거리는 아들 등을 떼밀어 미국유학을 보냈다.
『비록 자식에게 버림받더라도 그 자식을 끝내 버릴수 없는 게 부모된 도리』라는 아버지의 애틋한 목소리가 이 세상 아들들에게 크게 울려 퍼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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