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패 던진 盧, 제창 안한 朴까지···5·18 굴곡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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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둘러싼 39년의 세월은 파란만장(波瀾萬丈)하다. 그날의 비극 이후 광주는 한국 현대사의 상징처럼 고비마다 소용돌이쳐왔다.

특히 올해 광주는 자유한국당과 긴장 국면이다. 지난 2월 한국당 의원들의 5ㆍ18 폄훼 발언과 당의 대처에 분노하고 있다. 지난 3일 광주에서 물세례를 맞은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18일 기념식 참석을 예고하고 있어 다시 한번 충돌이 벌어질 수도 있다. 갈등과 화해를 넘나든 굴곡의 역사를 되돌아봤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17일 학생들이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ㆍ18민주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31년 전 : “전두환이 아직도 상전이냐”

여소야대 정국에서 진행된 1988년 11월 5공 청문회는 군사 정권의 부정부패와 5·18 광주의 진상을 규명할 기회였다.

국회 5공특위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통일민주당 노무현 의원이 질의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청문회 증언 대신 국회 본회의장 연설을 했다. 이때 “자위권 발동”이라는 말을 했고 ‘살인마’라고 비난을 받았다. 연단에서 내려와 본회의장을 나가는 전 전 대통령을 향해 국회의원 명패 하나가 날아왔다. 통일민주당 초선 의원 노무현이 던진 것이었다. 그는 여당(민주정의당)을 향해 “전두환이 아직도 너희들 상전이야”라고 소리 질렀다.

26년 전 : YS의 ‘과감한 용서’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금융실명제에 관한 특별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3년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YS)은 광주사태라는 용어에 마침표를 찍었다.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을 법제화했다. 93년 5월 13일 특별담화를 통해 “문민정부는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규정했다. 다만 진상규명에서는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는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훗날의 역사에 맡기는 것이 도리라고 믿는다. 다 같이 잊지는 말되, 과감하게 용서함으로써 새롭게 화해하자”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가 5일 5·18 묘역에서 분향하고 있다. [중앙포토]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12ㆍ12쿠데타 및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에 대한 여론이 높아졌고 YS는 5ㆍ18 특별법과 ‘역사 바로 세우기’를 추진했다.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이 처벌됐다. YS는 1997년 12월 22일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 2년 1개월여 만에 사면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99년 5ㆍ18 기념사에서 “우리 국민은 역사를 두고 영원히 5ㆍ18의거 희생자의 위업을 추모하고 국민적 자랑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16년 전 : “지역주의로 실패 않겠다”

DJ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5ㆍ18 기념식에서 “이제 우리 사회는 대립과 투쟁에서 대화와 협력으로, 집중과 통제에서 분권과 자율로, 소외와 차별에서 참여와 공존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호남 소외론, 대북송금 특검 등으로 호남 여론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다시 지역주의 때문에 실패하지 않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갖고 있다”며 “90년 (3당 합당) 이후 정치적 격변에서 마음에 담아뒀던 화해와 통합, 이 목표는 결코 내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5ㆍ18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ㆍ18민주묘지 에서 유족이 참배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6년 전 : 함께 부르지 못한 노래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은 “5ㆍ18 국립묘지를 방문할 때마다 광주의 아픔을 느낀다. 영령들이 남기신 뜻을 받들어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 그 희생과 아픔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기념사를 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방식을 참석자가 함께하는 제창 대신 합창단 합창으로 결정했다. 박 대통령은 노래가 시작되자 자리에서 일어서기는 했지만,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 18일 제33주년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앞서 2008년 이명박(MB) 대통령은 5ㆍ18 기념식에 참석했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따라 불렀다. 그는 “5ㆍ18 정신은 그 자체로 이미 귀중한 자산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국가 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후 MB는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8일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유족인 김소형씨를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5ㆍ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빌려 국회의 협력과 국민 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또 “완전한 진상 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정의의 문제”라며 “헬기 사격까지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고 5ㆍ18 관련 자료의 폐기와 역사 왜곡을 막겠다”고 강조했다.

3개월 전 : 망언 3인방

'5·18 망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자유한국당 김진태(왼쪽)·김순례 의원. [연합뉴스]

지난 2월 자유한국당 김진태ㆍ이종명 의원이 개최한 ‘5ㆍ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는 모독 파문으로 이어졌다. 발표자로 나온 지만원씨는 “북한군 개입”“전두환은 영웅” 등의 발언을 했다. 이 의원은 “폭동이 민주화 운동이 됐다”고, 김순례 의원은 “5ㆍ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이 세금을 축낸다”고 했다. 김진태 의원은 영상메시지로 “5ㆍ18문제만큼은 우파가 물러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당 윤리위는 이 의원 제명, 김순례 의원 당원권 정지(3개월), 김진태 의원 경고 등의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국회 윤리특위의 징계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오늘 : 다시 광주 찾는 정치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3일 오전 광주광역시 송정역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 행사를 마친 뒤 5ㆍ18 단체의 항의를 받으며 역사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여야 4당 지도부는 17일 광주에서 열리는 5ㆍ18 전야제에 참석한다. 황교안 대표 등은 기념식에만 참석한다. 민주당은 “황 대표가 광주에 오려면 정치 지도자답게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면서 진상규명 특별법과 망언 의원 징계 및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러 맞으려고 온다”는 의심도 제기되고 있다. 황 대표는 “국가보훈처의 초청을 받은 국가 기념일에 제1야당 대표로서 참석하는 게 도리”라는 입장이다. 여야 불문하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호남 민심을 얻어야 하는 정치인으로서는 광주와 등을 질 수도 없고, 5·18과 결별할 수도 없다.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