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버스파업, 땜질식 대응의 끝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35호 면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SUNDAY 편집국장 김종윤입니다. 지난 15일 버스 파업이 극적으로 철회되거나 보류되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버스 파업 철회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버스 근로자의 무제한 노동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 52시간 도입은 ‘일과 삶의 균형’을 넘어 버스 근로자와 국민의 생명 안전과 직결된 사안입니다.”

동의합니다. 이제 과로 사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대의를 부정할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선한 의도가 넘친다고 결과도 선하게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버스 노조가 파업 카드를 꺼내 든 이유가 뭡니까. 7월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무로 임금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컸기 때문입니다. 노선버스는 원래 주 52시간 근로 제외 업종이었지만 지난해 3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올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버스 파업 위기는 넘겼지만 과제는 더 쌓였다.      [중앙포토]

버스 파업 위기는 넘겼지만 과제는 더 쌓였다. [중앙포토]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서 일을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동안 초과근무수당이나 휴일근무수당 등을 받아온 근로자의 소득은 줄 수밖에 없죠. 제도가 변경되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런 부담을 사회 구성원이 어떻게 나눌지 미리 논의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버스 사태를 해결하는 정부의 방식을 돌이켜보면 무능과 안일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근로자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인데 지방자치단체의 업무라며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결국 조직화한 버스 노조는 약한 고리인 서민의 이동권을 공략해 임금을 올리고, 정년을 연장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 부담은 고스란히 버스 이용자에게 돌아갑니다. 경기도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버스 요금을 인상하고, 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하는 수순을 밟을 전망입니다.

그런데 요금을 올리는 대신 버스 회사가 생산성 향상이나 경영 혁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펼칠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 적이 있습니까. 현재 서울 등 7개 시ㆍ도에서는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 중입니다. 버스 회사의 적자를 메워주기 위해 들어가는 납세자의 세금만 연간 1조원입니다. 이 돈이 곳곳에서 술술 새는데 이를 막기 위해 어떤 보완책을 마련했다는 소식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주 52시간 근무제의 취지를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려면 세심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부가 선한 의지를 앞세워 밀어붙이는 정책은 대부분 부작용의 늪에 빠져 좌초하기 쉽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주 52시간제가 적용돼 잡음이 덜한 편입니다. 그나마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은 이미 준비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년 1월부터는 50인 이상~299인 이하 사업장도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습니다. 이에 앞서 올 7월부터는 주 52시간제에서 제외되는 특례업종이 26개에서 5개로 줄어듭니다. 대부분의 업종이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들 업종의 종업원은 임금이 줄어드는 현실을 바로 접할 겁니다. ‘저녁 있는 삶’도 좋지만 ‘저녁밥 없는 삶’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질 겁니다. 탄력근로제 범위를 확대하는 등 일부 보완책을 추진하지만, 법안은 국회에서 낮잠 자고 있고, 설령 국회를 통과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번 버스 사태처럼 근로자들이 파업하겠다고 위협하며 임금을 올려달라고 하면 납세자의 세금으로 메워줄 겁니까.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까지 주 52시간제 도입의 성과를 냉정히 분석하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정부의 땜질식 대응이 이어질수록 납세자의 호주머니만 털린다는 불만이 끓어오를 겁니다.

지난주 중앙SUNDAY는 문화재 보존의 세계를 돌아봤습니다. 문화재 ‘중증 환자’는 몰려드는데 이를 고칠 예산과 인력은 모자랍니다. 첨단 과학 기법을 도입해야 하고, 고급 인력은 더 필요합니다. 재원이 한정돼 문화재 보존에만 많은 예산을 투입하기 힘들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문화재에는 역사의 혼이 담겨 있습니다. 발전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 고맙습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