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LG·한진·두산의 새 ‘총수’들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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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어제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 대기업 규제의 기준점이 되는 대기업집단 리스트와 각 그룹의 총수를 지정해 발표했다. 구광모(41) LG 회장과 조원태(44) 한진 회장, 박정원(57) 두산 회장이 새로 이름을 올렸다. 최근 경영권을 승계받은 젊은 오너들로, 녹록지 않은 국내외 경제 여건 속에서 미래 먹거리 발굴 등을 통해 경영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거센 도전에 맞닥뜨린 셈이다.

젊은 총수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복잡미묘하다. 창의와 혁신의 새 바람을 불어넣으리라는 기대 못지않게 역경을 모르고 곱게 자란 3~4세대 기업인의 한계를 걱정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해외 국제회의에서 “한국 재벌은…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연설을 하려고 했을 정도로 국민들 사이에 점점 커져 가는 반기업 정서는 이들이 넘어야 할 또 하나의 큰 도전이다. 물론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다. 일각의 갑질과 폭행으로도 모자라 최근엔 현대가와 SK 자손들의 마약 사건까지 불거져 국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원래 우리 기업가들은 이렇지 않았다. “해 봤어?”정신은 현대 정주영 창업주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다. 1세대 기업인들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도전정신과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 덕에 한국이 지금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내 주머니가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먼저 생각했다. LG 구인회 창업주는 “돈을 버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라 하지만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 기업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복리를 먼저 생각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의 백년대계에 보탬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한진 조중훈 창업주에게 사업의 목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오직 돈을 벌어 즐기겠다는 목표였다면 굳이 모험을 무릅쓰고 어려운 사업을 계속해야 할 까닭이 없다”고 했다. 100년 기업 두산의 실질적 창업자로 꼽히는 박두병 회장은 투병 중이던 1973년 7월 “내일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기업과 우리나라 상공업계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말을 하고 한 달 뒤 타계해 동시대 기업인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몇몇 인간적인 흠결이나 경영상 과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1세대 창업주들이 존경받는 이유다.

지금의 경영환경은 이들 1세대 창업주들이 활동하던 때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하지만 사회적 존재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건 다르지 않다. 새 총수들이 이를 늘 마음에 새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