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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챙긴 김여정 한 달 넘게 ‘잠적’…하노이 여파에 허리부상설

중앙일보

입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자 ‘보이는 실세’로 평가받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정치국 후보위원)이 한 달 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달 11~12일 최고인민회의(정기국회 격) 이후 김여정 제1부부장이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며 “어떤 배경이 있는지를 파악 중”이라고 전했다. 다른 당국자는 “김 제1부부장은 남북정상회담이나 북ㆍ미 정상회담 때 비서실장격인 김창선 국무위 부장을 제치고 김 위원장의 지근 거리에서 보좌했다”며 “특히 대외행사에서 김 제1부부장의 역할은 컸지만 최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인 지난 2월 26일 새벽 중국 남부 난닝의 역에서 휴식을 취하며 담배를 피우자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크리스탈 재질로 보이는 재떨이를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일본TBS}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인 지난 2월 26일 새벽 중국 남부 난닝의 역에서 휴식을 취하며 담배를 피우자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크리스탈 재질로 보이는 재떨이를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일본TBS}

김여정은 지난달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진행된 북ㆍ러 정상회담 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각에선 김여정이 김 위원장에 앞서 회담장 현지로 이동했다는 관측까지 나왔지만, 북한 매체들이 공개한 사진이나 동영상 뿐만 아니라 서방 언론에서도 김여정은 나오지 않았다. 당국은 김여정이 현지에 가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제1부부장(사진 붉은 원)이 등장했던 지난달 정치국 확대회의. [연합뉴스=조선중앙통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제1부부장(사진 붉은 원)이 등장했던 지난달 정치국 확대회의. [연합뉴스=조선중앙통신]

김여정의 ‘잠적’과 관련해선 다양한 추정이 나오고 있다.
우선 하노이 2차 북ㆍ미 정상회담 결렬에 따른 유탄이 김여정에게도 튀었다는 분석이 있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뒤 회담 관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김영철 당 부위원장도 회담 결렬에 대한 자아비판을 했다고 한다. 김영철은 직접적인 문책은 피했지만 자신이 겸직하던 통일전선부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또 실무회담에 나섰던 김혁철 국무위 대미특별대표도 외무성으로 복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성혜 당 통전부 실장 역시 문책을 당해 근신 중이라는 게 대북 소식통의 설명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책임을 물으면서 당시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던 김여정을 여동생이라고 봐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처벌은 하지 않더라도 조명을 받지 않게 해 자숙하는 모양새를 염두에 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북한 고위 당국자들은 연례적으로 20~30일씩 휴양 또는 요양을 하는데 몸도 추스를 시간을 가지면서도 외부적으로는 자숙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김영철 당 부위원장을 다른 쪽으로 안내하는 등 회담을 챙기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김영철 당 부위원장을 다른 쪽으로 안내하는 등 회담을 챙기고 있다. [중앙포토]

중국 내에선 부상설이 나오고 있다. 다른 대북 소식통은 “김여정이 최고인민회의 이후 허리에 부상을 입어 요양중”이라며 “행사를 준비하다가 다쳤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서울에서 김여정을 직접 목격했던 정부 당국자는 “김 제1부부장은 160㎝ 중반 가까이 되는 키였다”며 “가까이서 보니 외형상 건강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고 귀띔했다. 통일부는 김여정을 1987년생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만 32세인 그가 그동안 오빠(김 위원장)를 챙기다 정상회담 이후 다소 ‘여유’가 생겨 임신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지난해 2월 평창 겨울 올림픽 때 특사 자격으로 방한했는데, 당시에도 임신설이 돌았다.

김여정이 일부러 노출을 피했든, 부상을 당한 때문이든 김여정의 존재감은 줄지 않는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일관된 얘기다. 일부에선 김여정이 오빠를 대신한 모종의 역할을 하느라 공개 활동에 나설 여유가 없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김 위원장은 비서실이나 고위간부들 등 정식라인을 통해 보고를 받고 있는데 이와 별도로 김여정으로부터 직보도 받고 있다고 한다. 공식 보고라인에서 김 위원장이 기분 나빠할 수 있는 내용이 걸러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실상을 파악하기 위한 김여정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여정이 부처를 가리지 않고 관여하고 있는데, 지난달 당과 국가기관의 부서장급 인사를 한 뒤 후속 인사에 관여하느라 정상회담 등에 나서지 못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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