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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폭행' 당한 여대생 구한 총리 경호원 "몸이 움직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2일 오전 5시 30분 중간고사 준비를 위해 첫차를 타고 등교하던 20대 초반 여대생의 얼굴에 별안간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종로3가역에서 안국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3호선 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졸고 있던 여대생 앞에 서 있던 40대 남성 A씨는 양손으로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발을 들어 A씨의 얼굴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30대 남성은 여대생에게 손짓으로 ‘서로 아는 사이냐’고 물었고 여대생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면서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남성은 바로 A씨를 메쳐 검거했다.

2017년 11월에도 지하철에서 승객들 구해

지하철에서 묻지마 폭행범을 검거한 총리실 경호팀 소속 이조윤 경장이 14일 오후 정부청사에서 인터뷰 중이다. 권유진 기자

지하철에서 묻지마 폭행범을 검거한 총리실 경호팀 소속 이조윤 경장이 14일 오후 정부청사에서 인터뷰 중이다. 권유진 기자

이 남성은 국무총리공관 파견대 경호팀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의 근접수행을 하는 이조윤(30) 경장이다. 4년차 경찰인 이 경장은 현재 총리 경호팀에 파견돼 이 총리와 가장 가까이 붙어 다니며 신변을 보호하는 일을 맡고 있다. “오래 고민할 겨를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여서 여성을 구하게 됐다”는 이 경장이 지하철에서 시민을 구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7년 11월 지하철 3호선 금호역을 진입하던 전동차 지붕에서 스파크가 발생해 승객 350여명이 대피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이때 우왕좌왕하는 시민들을 대신해 지하철 문을 비상개방하고 시민들의 대피를 도운 것도 그였다.

14일 오후 이 경장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A씨 체포 당시 상황이 어땠나
지하철 첫차를 타고 출근하고 있었는데 차 안에 거의 노인들만 있을 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때 A씨가 여대생을 폭행하는 장면을 보게 됐다. 맞은편에서 보고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나서 상황을 파악한 후 체포했다. 무릎으로 A씨의 뒷덜미를 누른 상태에서 지하철 밖으로 끌고 나왔는데 그동안 A씨는 계속 “나 조현병 환자다”고 소리쳤다. 당시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였고 음주 상태도 아니었던 걸로 안다.    

이후 A씨는 종로경찰서로 넘겨져 조사를 받았는데 이때 “여성 승객이 나를 보며 피하듯 지갑으로 얼굴을 가렸다”며 “기분이 나빠서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 경장은 “나중에 알게 됐는데 피해자가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건 A씨의 일방적 진술”이라며 “피해자는 당시 눈을 감고 자는 상태에서 갑자기 맞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제압하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아주 잠깐 ‘내가 끼어도 되는 상황인가’라는 고민을 했지만 그건 1초 정도였다. ‘일단은 떼어내자, 여성부터 보호하자’라는 생각에 바로 제압했다.
2017년 11월 금호역에 진입하던 전동차에 스파크가 발생해 연기가 자욱해져 시민들이 대피했을 때도 도움을 줬다고 들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당시 전동차 안에서 창문을 보는데 연기가 자욱하고 차 안으로까지 들어왔다. 지하철 안내방송도 처음에는 “문을 개방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문을 열고 대피하라”고 나왔다. 얼른 문을 강제개방하고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나도 밖으로 나가고 있었는데 나머지 칸에 있던 승객들이 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걸 봤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서 다섯 칸 정도의 문을 개방하고 시민들을 대피시켰다.
총리 경호팀에 지원한 이유가 있는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등을 지키는 게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지금 지키는 게 총리 한 사람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지킨다고 생각하고 일을 하고 있다. 
서울 중부경찰서 광희지구대 근무 당시 사격 훈련 후 팀원들과 점심을 먹고 있는 모습. [사진 이조윤 경장 제공]

서울 중부경찰서 광희지구대 근무 당시 사격 훈련 후 팀원들과 점심을 먹고 있는 모습. [사진 이조윤 경장 제공]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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