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차로 통제된 이유…‘뒤뚱뒤뚱’ 오리 가족의 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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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둥오리 14남매의 먼 여정. [사진 광주 광산경찰서 제공]

청둥오리 14남매의 먼 여정. [사진 광주 광산경찰서 제공]

나들이객의 행렬이 이어진 지난 12일 오후 광주광역시 광산구 수완동 임방울대로가 예고 없이 통제됐다. 어미 오리 꽁무니를 쫓는 새끼 오리 14마리가 차로를 가로질러 건넜기 때문이다.

청둥오리 14남매의 먼 여정. [사진 광주 광산경찰서 제공]

청둥오리 14남매의 먼 여정. [사진 광주 광산경찰서 제공]

1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왕복 10차로에 이르는 임방울대로는 오리 가족의 여정으로 통제됐다.

경찰관은 가던 길을 가던 멈춘 운전자들에게 “어미 오리가 새끼들을 데리고 길을 건너고 있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라며 양해를 구했다. 운전자들은 오리 떼를 인내심 가지고 지켜봤다고 한다.

청둥오리 14남매의 먼 여정. [사진 광주 광산경찰서 제공]

청둥오리 14남매의 먼 여정. [사진 광주 광산경찰서 제공]

오리 가족의 여정을 경찰까지 나서서 지키게 된 사연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풍영정천 인근 한 아파트 옥상에 날아든 어미 청둥오리는 겨울 동안 알을 품어 새끼를 부화시켰다.

자연으로 돌아가려 길을 나선 오리 가족은 습성대로 지상 20층인 아파트 옥상에서 같이 뛰어내렸다.

어미는 애써 키워낸 새끼를 모두 잃었다.

홀로 살아남은 어미는 다시 찾아온 겨울 아파트 옥상으로 돌아와 새끼를 또 길러냈다. 비극은 반복됐다.

이를 지켜보던 주민들은 동물보호단체와 함께 지난 겨울에도 찾아온 어미와 새끼들을 지켜주기로 했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 강이나 저수지로 움직일 때가 되자 비닐을 이어붙여 만든 탈출통로를 옥상에서 지상까지 연결했다. 사람 개입을 최소화해 오리 스스로 자연을 찾아 떠나도록 하기 위해서다.

오전 7시 30분 아파트 옥상을 떠난 오리 가족은 약 10시간 만에 직선거리로 200m 남짓한 풍영정천에 도달했다.

광주 광산경찰서 관계자는 “경찰 본연의 임무가 아니었기에 장시간 회의를 거쳐 긴급도로통제 결정을 내렸다”며 “귀한 생명을 지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준 시민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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