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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윤기자의고갯마루얘기마루] 인제군 ~ 양양군 옛조침령(鳥寢嶺)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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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조침령(인제) 글·사진=성시윤 기자

굳이 '옛'자를 붙여 부르는 까닭은 이곳으로부터 백두대간 등성이를 따라 2㎞가량 올라간 곳에 현재 조침령(770m)으로 알려진 고개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조침령(왼쪽 사진)은 1980년대에 비포장 도로가 뚫리면서 통행이 활발해졌다. 그 바람에 원래의 조침령, 그러니까 옛조침령으로부터 그 이름을 얻어 가게 됐다.

옛조침령.조침령에서 백두대간 마루를 따라가면 남쪽으로는 구룡령과 갈전곡봉(1204m)이, 북쪽으로는 단목령과 점봉산(1424m)이 자리 잡고 있다.

옛조침령이 있는 기린면 일대는 전국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에 속한다. 서울에서 출발, 인제군 기린면 현리에서 418번 지방도로를 타면 옛조침령 입구(기린면 진동2리)에 이르기까지 10여 ㎞ 거리에 깊은 골짜기들이 널려 있다.

우선 418번 지방도로와 나란히 방태천이 흐른다. 그리고 방동계곡.적가리골.진동계곡.아침가리골.연가리골.미아골 등에서 흘러온 산간수(山間水)들이 방태천에 몸을 섞는다. 이 중 적가리골.아침가리골.연가리골 등은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 난리를 피해 숨어 살기 좋은 곳으로 소개돼 있기도 하다. 게다가 418번 지방도로 변으로 방태산 휴양림과 방동약수까지 있으니, 418번 지방도로만큼 푸짐한 계곡길이 또 없다 할 만하다.

418번 도로 쇠나드리교(橋) 인근 공터에 차를 세우고 동편 산기슭으로 접어든다. 가슴 높이로 자란 수풀을 1, 2분 정도 헤치며 길의 흔적을 찾다 보면 온전히 남아 있는 옛길을 어느덧 만날 수 있다.

고갯마루에 오르는 길섶에는 단풍취.취나물.좀쥐오줌 등의 산채가 자라고 있다. 조록싸리는 보라빛꽃을 주렁주렁 달았고, 주황색 참나리는 활짝 꽃잎을 벌리고서도 수줍은 듯 땅만 쳐다본다.

산행 시작 15분 만에 옛조침령 고갯마루에 닿는다. 마루에는 조침령과 구룡령의 방향을 가리키는 푯말이 서 있다. 80년대 이전만 해도 이 고개는 옛조침령이 아닌 조침령이었다. 이름 잃은 고개의 설움이다.

왜 조침령인가. 혹자는 '새도 하루 자고서 넘어야 할 만큼 높은 고개'라고 해석한다. 과연 그렇다. 옛조침령에서 양양 서면 서림리로 내려가는 계곡길은 가파르고 험하다. 옛길의 흔적을 찾아 100여m를 내려가다 포기하고 만다.

옛적에는 선질꾼(산간지역 간 교역을 담당했던 소상인)들이 하루 50여 명씩 옛조침령을 넘었다. 그들은 양양에서 소금이나 어물 등속을 사서 지게에 지거나 말에 싣고 인제 땅에 팔았다.

"하도 가난해 새끼손가락 꽂을 땅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울대 짊어지고 조침령(옛조침령)을 넘었지. 진동리에서 서림까지 70리 길이었어."

양양군 서면 서림리에 60년 넘게 살아온 이성영(88)씨의 말이다. 그가 젊을 적 현재의 조침령을 이용하는 사람은 옛조침령을 넘는 사람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노인은 옛조침령을 조침령으로, 현재의 조침령을 반부둑 고개라 불렀다.

노인의 말을 떠올리며 옛조침령 고갯마루에서 조침령을 향해 백두대간 마루를 밟는다. 능선길은 조붓하고 편안하다. 옛조침령에서 조침령 정상까지 2㎞거리.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돼 발걸음은 가볍고도 흥겹다. 길옆으로 키 큰 교목과 키 작은 관목이 적당히 섞인 덕에 능선길은 한없이 푸근하고 아늑하다.

◆ 조침령의 어제와 오늘

조침령 정상의 고갯마루 비석에 새 조침령의 역사가 씌어 있다. 1983, 84년 3군단 공병여단이 인제군 기리면 방동리에서 현재의 조침령을 넘어 양양군 서면 서림리에 이르는 21㎞의 비포장길을 닦았다. 전시에 대비한 군사작전도로였다. 비포장길이라 하지만 당시 이곳 사정으로선 신작로나 다름없는 길이었을 터. 선질꾼들은 더 이상 옛조침령의 고갯길을 힘겹게 넘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 고개가 조침령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21㎞에 이르는 비포장 고갯길 밑으로는 '조침령터널'이 뚫려 있다. 현재 포장 공사가 진행 중이며 연말이나 내년 연초에 왕복 2차로의 아스팔트길과 터널이 개통돼 현재의 비포장길을 대신하게 된다.

조침령 마루에서 진동리 마을로 내려오는 1.6㎞ 비포장길. 길옆으로 노란 기린초(사진(上)), 보라색 엉컹퀴(사진(下)), 꿀풀 등의 야생화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이제 내년이면 오지 중의 오지 진동리의 모습도 꽤 달라져 있을 것이다. 옛조침령에 깃든 새들은 그때에도 편히 잠잘 수 있을까.

*** 여행정보

■ 찾아가는 길(서울 출발 기준)=양평 방향 6번 국도→ 홍천 방향 44번 국도→ 구성포 교차로에서 우회전해 인제 방향 56번 국도→장촌삼거리에서 현리 방향 좌회전해 31번 국도→현리 진방삼거리에서 우회전해 418번 지방도로 따라가다 쇠나드리교 부근에 주차

■ 추천 숙소=쇠나드리교 인근의 송림민박(www.minbak4033.co.kr) 033-463-7690. 예약 손님만 받는다. 숙박료는 가족당 5만원. 방마다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마가목.오가피.인진쑥 등 세 가지 약초를 넣고 끓인 물을 식수로 제공한다.

■ 여행상품=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 720-8311. 8월까지 매주 토.일요일에 당일 일정으로 조침령 트레킹 행사를 진행한다. 코스는 쇠나드리 ~ 미아골(들꽃기행)~ 조침령 옛길 ~ 조침령 ~ 쇠나드리 순이다. 참가비 3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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