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작곡가 교가 바꾼 첫 학교 나왔다…“친일 잔재 청산”

새 교가 배우는 학생들. [사진 광주시교육청]

광주 광덕중·고등학교가 “지역 교육계 친일잔재 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위한 첫 사업으로 친일(親日) 작곡가가 만든 교가(校歌)를 교체 완료했다”고 12일 밝혔다. 기존 교가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음악가가 만든 곡이다. 새로운 교가는 5월 13일 38주년 개교기념식에서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처음 제창된다.

광덕중·고는 지난 1월 친일 음악가 김성태(1910~2012)가 교가를 작곡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곧바로 교가 제창을 금지했다. 이후 교가 교체를 위한 TF팀을 꾸렸고 4개월에 걸친 작업으로 새 교가가 탄생했다. 작곡은 광덕고 음악 교사로 재직 중인 최재훈 성악가가 담당했다.

광덕중·고 학교법인인 만대학원 신흥수 이사장은 “신채호 선생의 후손으로서 친일작곡가의 곡이 한동안 울려 퍼졌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의식이 바로 세워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친일잔재를 청산하도록 도움 준 학교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신 이사장은 2008년 취임 이후 학교 법인 내 친일 잔재 청산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 2012년엔 일본의 욱일기 형상을 한 학교 엠블럼을 교체했으며 지난해에는 교화를 ‘국화’에서 신품종 개량한 ‘광덕 무궁화’로 교체했다. 신 이사장은 3·1만세운동 유공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고(故) 신태식 선생 손자다.

광덕중·고의 기존 교가는 가곡 ‘동심초’, ‘못 잊어’, ‘산유화’ 등을 작곡한 원로 작곡가 고(故) 김성태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의 작품이다. 그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음악선생이었던 현제명(1902~1960)의 눈에 띄어 작곡과 이론을 배운 뒤 졸업반 때 동요집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졸업 후 일본 도쿄고등음악학교 작곡부에 유학을 갔다가 1939년 귀국한 뒤 일제 어용 음악가단체에 몸을 담는 등 친일 행적을 보였다. 2008년 좌파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친일 음악가로 등재됐다.

한편 광덕중·고 외에 금호중앙여고, 광주일고, 대동고 등도 “친일 음악가가 작곡한 교가를 부르게 할 순 없다”며 교가를 바꾸기로 하는 등 광주 교육계에 교가 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광주일고 교가는 동요 ‘섬집아기’와 군가 ‘진짜사나이’를 남긴 작곡가 이흥렬(1909~1980)이 만들었다. 광주일고 총동창회는 교가를 바꾸기로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씨에게 새 교가 작곡을 의뢰했다.

광주시교육청은 지난 1월 발표된 광주 친일잔재 용역 결과에서 광주 각급 학교 교가의 작사·작곡가 중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 4명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들이 만든 교가를 불러온 학교는 ▶전남대, 숭일중·고(현제명) ▶호남대, 서영중·고와 서영대, 금호 중앙중·금호여고, 대동고, 동신중·고(김동진) ▶광덕중·고(김성태) ▶광주일고(이흥렬) 등이다.

광주교육청은 올해 안에는 더 많은 학교가 새 교가를 부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