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상기자의맛GO!] 한정식집 '어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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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주부들의 점심은 늘상 '나홀로 밥상'이다. 기본적으로 따듯한 밥과 맛있는 반찬과는 거리가 멀다. 표면이 말라 버린 전기밥솥 밥에 남편과 아이들이 남긴 반찬이 고작이다. 먹는다는 것보다 때운다는 개념이 강하다. 그러나 남편들의 점심은 대부분 '다함께 외식'이다. 업무상 대접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맛있는 음식만 골라 먹는다. 그런 호사가 아니더라도 영양사가 차린 구내식당 건강 식단으로 푸짐하게 해결한다.

이런 '점심 불평등'을 남편들이 모르는 건 아니다. 미안한 마음에 동창이나 학부모들과의 점심 모임 땐 멋진 곳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콩나물값도 깎는 아내들은 자기 혼자 기분 내려고 아무 곳이나 덥석 들어서지 않는다. 맛.분위기.가격을 따지며 고르고 골라 점심 모임을 한다.

서울 구로보건소 건너편 현대파크빌 지하1층에 위치한 '어울림(02-867-9292)'엔 점심 손님 대부분이 '알뜰한 아내'들이다. 일단 음식값은 제쳐 두고 여성이 따지기 좋아하는 분위기를 살펴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매장을 가로질러 시냇물이 흐른다. 다리도 놓여 있고 풀숲도 만들어져 있다. 시냇물 양쪽의 통유리 룸에서 보는 바깥 풍경은 '자연 속'으로 바뀐다.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일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다.

메뉴는 쇠고기 숯불구이가 있는 한정식. '고기구이 냄새'와 '깔끔.정갈'로 대비되는 두 메뉴가 절묘하게 혼재해 있다. 점심 특선으로 내놓는 갈비정식이 1만5000원이다. 한우로 만든 양념 쇠갈비가 무려 두 대나 나온다. 무게로 따지면 180g이란다. 여기에 야채샐러드.연어쌈.꽃게무침.해파리냉채.잡채 등이 한 상 차려진다. 돼지고기보쌈에 황태찜 등으로 구성된 1만원짜리 산울림한정식도 부족함이 없는 푸짐한 밥상이다. 식사는 두 가지 모두 이 집에서 직접 뽑은 냉면이나 된장찌개 가운데 고를 수 있다. 저녁 준비를 걱정하며 자리를 떠야 하는 아내들의 발목을 잡는 게 또 하나 있다. 마지막에 오르는 후식 음료. 칵테일처럼 마시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다. 독립 공간을 위해 30여 개 룸을 갖추고 있지만 시냇물 옆 룸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차지하기 어렵다. 점심과 달리 저녁 시간엔 인근 구로디지털단지 기업인들의 비즈니스 장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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