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불 때 돌반지 기부했던 아버지에게 닥친 슬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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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인근 속초까지 번졌다. 지난 4월 5일 오전 속초 장사동 인근에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진압 작업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인근 속초까지 번졌다. 지난 4월 5일 오전 속초 장사동 인근에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진압 작업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강원도 고성 산불 이재민을 위해 써달라며 막내아들 돌 반지를 기부했던 한 아버지가 수영장 다이빙 사고로 중학생 딸을 잃은 사실이 알려졌다.

1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아버지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어린이날 전날이던 지난 4일 오후 2시 35분쯤 인천시 미추홀구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는 학생들의 다이빙 훈련이 한창이었다.

중학교 2학년인 최아연(14)양도 지상훈련을 마친 뒤 다이빙 높이를 점차 올리며 연습에 매진했다.

다이빙 국가대표를 꿈꿔온 최양은 일요일 하루만 빼고는 수영장에 매일 나왔다고 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사고는 한순간에 찾아왔다. 연습이 거의 끝나갈 즈음 몸을 돌면서 입수하는 트위스트 자세로 점프한 최양은 직후 다이빙대에 머리를 부딪쳤다.

최양은 심각한 상처를 입은 채 물에 떨어졌고, 응급조치를 받으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같은 날 오후 9시께 끝내 숨졌다.

강원도 산불피해 이재민에 최광우씨가 기부한 돌반지와 손편지. [사진 강원도 속초시 제공]

강원도 산불피해 이재민에 최광우씨가 기부한 돌반지와 손편지. [사진 강원도 속초시 제공]

아버지 최광우(47)씨는 사고 전날 최양과 한 마지막 통화를 전했다.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묻자 ‘난 어린이가 아니니까 9살 동생 선물부터 해 달라’던 속 깊은 딸이었다고 한다.

딸을 잃은 최씨의 아픔은 더욱 컸다. 최씨 부부는 1남 3녀 중 늦둥이인 막내아들 돌을 지난 3월 말에 막 치른 터였다.

앞서 최씨는 지난달 고성 산불 이재민들의 모습을 TV에서 본 뒤 지인들에게서 받은 아들 돌 반지 6개와 팔찌를 모두 속초시에 기부하기도 했다.

최씨는 돌 반지와 함께 보낸 손편지에 “지인분들이 축하해 준 아들 돌 반지를 이웃과 함께 나누고자 보낸다. 반지 안에는 많은 사랑이 담겨 있다. 피해지역에 다 써달라”고 적었다. 당시 아내도 딸도 모두 그의 결정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최아연양이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쓴 어버이날 손편지. [사진 최광우씨 제공]

고 최아연양이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쓴 어버이날 손편지. [사진 최광우씨 제공]

늘 오전 1시에 일하러 나가는 탓에 사고 전날 딸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최씨는 “퇴근하고 오는데 동생한테서 전화가 와서 그때야 사고 소식을 들었다”며 “응급실에 달려가 늦게서야 딸의 얼굴을 봤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최양이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남긴 손편지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다. “평일에는 못 보지만 주말에 웃는 얼굴로 인사해주는 아빠! 새벽 일 할 때 항상 안전운전하시고 아프지 마세요. 항상 기도할게요! 사랑해요♡”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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