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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미처 몰랐던 배우 유선의 포악하고 비정한 얼굴

중앙일보

입력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 의붓남매를 학대한 계모 지숙(유선)이 비정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 의붓남매를 학대한 계모 지숙(유선)이 비정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유선은 전쟁같은 일상에서도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열혈 워킹맘을 연기한다. [사진 KBS]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유선은 전쟁같은 일상에서도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열혈 워킹맘을 연기한다. [사진 KBS]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이하 세젤예)에서 전쟁같은 일상에서도 어린 딸을 살뜰히 챙기는 워킹맘으로 열연중인 배우 유선(43).
그가 22일 개봉하는 영화 '어린 의뢰인'에선 의붓자식들을 끔찍하게 학대하는 계모의 비정한 얼굴을 선보인다.
공교롭게 양 극단의 모성을 동시에 보여주게 된 그는 "영화 속 캐릭터가 주는 섬뜩함을 드라마로 희석할 수 있어 오히려 잘됐다"고 말했다.
'어린 의뢰인'은 2013년 세상에 큰 충격을 주었던 '칠곡 아동학대 사건'을 모티프로 만든 영화다. 유선이 맡은 지숙은 아무런 이유 없이 의붓남매를 학대한다. 자신의 무차별 폭행으로 남동생이 죽자 누나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악마같은 계모다.
의지할 데 없는 남매의 말에 귀 기울여주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게 되는 변호사 정엽(이동휘)과 대척점에 선 인물이다.
8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유선은 극악무도한 계모 역할을 맡게 된 이유부터 설명했다.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과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 양 극단의 모성을 동시에 보여준 배우 유선. [사진 이스트드림시노펙스]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과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 양 극단의 모성을 동시에 보여준 배우 유선. [사진 이스트드림시노펙스]

영화 '어린 의뢰인'의 포악한 계모, 드라마 '세젤예'에선 따뜻한 워킹맘 

"악역에 대한 부담이 없진 않았지만, 세상에 꼭 나와야 할 영화라고 생각했기에 선택했어요. 사회에 만연한 아동학대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선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악역이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극악한 내 몫을 잘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연기했습니다. 아동학대 예방 홍보대사로서의 책임감이기도 하죠."
지숙이 남매를 폭행하기 앞서 서늘한 눈빛과 함께 긴 머리를 뒤로 묶는 장면은 영화에 섬뜩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유선은 "지숙이 머리만 묶어도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구나 암시할 수 있는 상징적 표현이었다"고 말했다.
세상의 그 어떤 악인도 그렇게까지 된 데는 나름의 사연이 있는 법. 유선은 지숙이 괴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감독과 함께 많은 고민을 했고, 이를 후반부 법정신의 대사로 풀어냈다고 했다.
"피고인 지숙이 법정에서 '밥 해주고 옷 입혀주고 학교 보내고 그런 게 엄마 아니냐. 내가 안한 게 뭐가 있냐'며 당당히 항변하는데, 이 장면을 관객들이 슬프고 먹먹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지숙이 부모의 사랑 없이 자라나 괴물이 돼버린 건, 모든 어른의 책임이자 사회의 책임이니까요. '당신은 과연 좋은 부모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예요."
그는 "영화 '도가니'가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를 이끈 것처럼, 이 영화도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미약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 배우 유선은 의붓남매를 학대하는 비정한 계모를 연기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 배우 유선은 의붓남매를 학대하는 비정한 계모를 연기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영화를 끝내고 곧바로 촬영에 들어간 드라마 '세젤예'는 유선에게 영화의 어두운 기운을 씻어내는 '힐링'같은 작품이었다. 현실감 넘치는 유쾌한 가족드라마인데다 자신이 맡은 역할도 공감 100%의 워킹맘이어서 그는 "휴식같은 느낌으로 즐겁게 연기하고 있다"고 했다.
극중 유선이 맡은 미선은 어린 딸 다빈의 육아를 놓고 친정엄마(김해숙)와 시어머니(박정수)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철부지 남편(이원재) 때문에 속앓이 하면서도 꿋꿋이 일과 가사를 병행해가는 열혈 워킹맘이다.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의 한 장면. 큰 딸 미선(유선)이 서러움에 북받쳐 친정엄마 선자(김해숙)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사진 KBS]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의 한 장면. 큰 딸 미선(유선)이 서러움에 북받쳐 친정엄마 선자(김해숙)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사진 KBS]

'세젤예' 찍으며 영화의 아픔 씻어내…현실감·공감이 드라마 인기요인   

"'엄마가 사회생활 해봤어? 엄마 나도 정말 힘들다구'라며 울부짖는 장면은 실제 워킹맘으로서 공감이 많이 됐어요. 극중 친정엄마와 옥신각신 싸웠다 풀었다 하는 것도 제 모습과 많이 닮았어요. 남편을 막 대하는 미선과 달리 저는 아이 앞에서 아빠를 높여줍니다. 가장이 바로 서야 집안이 평안하다는 주의거든요. 그리고 제 남편은 극중 남편과 달리 집안의 제 빈자리를 자상하게 채워준답니다.(웃음)"
드라마에서처럼 실제로도 6살 딸을 키운다는 유선은 '세젤예'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다빈'이란 딸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 자신에게 학대받는 의붓딸 이름 또한 다빈이기 때문.
"다빈이란 이름을 영화와 달리 따뜻하게 불러야 하니까 처음엔 무척 이상했어요. 문득 이것도 인연인가란 생각도 들었죠. 다빈이란 이름을 사랑스럽게 부르는 엄마로 돌아오면서 영화를 찍으며 겪었던 아픔이 치유되는 느낌이었습니다."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큰 딸 미선(유선)이 친정엄마 선자(김해숙)를 끌어안고 울고 있다. [사진 KBS]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서 큰 딸 미선(유선)이 친정엄마 선자(김해숙)를 끌어안고 울고 있다. [사진 KBS]

'세젤예'가 초반부터 인기몰이를 하는 이유로 그는 '현실감'과 '공감'을 꼽았다.
"김종창 PD가 배우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얘기를 통해 문제점을 짚어주고, 어떻게 풀어갈 지 같이 고민할 여지를 제공하는 게 드라마의 역할'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런 의도대로 장녀인 저는 워킹맘의 현실을, 막내딸(김하경)은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세대의 모습을, 둘째딸(김소연)은 난관 속에 성장해가는 대기업 여성간부의 고군분투를 보여주고 있죠. 아울러 노인들의 손주 육아부담과 구직난 등 다양한 세대의 문제를 고루 투영하는 게 이 드라마의 미덕이라 생각합니다."
유선은 '돈 크라이 마미'(2012)에서 딸을 자살로 몰고간 이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는 엄마를 연기한 이후, 엄마 역할이 계속 들어온다고 했다.

영화 '돈 크라이 마미'의 한 장면. [영화사 제공]

영화 '돈 크라이 마미'의 한 장면. [영화사 제공]

해보지 못한 일탈 연기로 풀어…조직보스나 악의 축 연기 도전하고파  

그는 "같은 엄마 연기를 해도 전작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택한다"며 "'어린 의뢰인'의 엄마는 아이를 지키려 하는 '돈 크라이 마미'의 엄마와는 정 반대의 캐릭터였기에 마음이 더욱 끌렸다"고 했다. 엄마 연기에서 벗어나 존재 자체로 주목받는 독립적인 캐릭터에 대한 갈망도 크다고 덧붙였다.
 "tvN 드라마 '크리미널마인드'에서 가족 배경이 중요하지 않은 화이트해커 역할을 했는데, 굉장히 매력 있었어요. 결혼 여부나 가족 유무가 중요하지 않고, 존재 만으로도 충분히 힘을 발휘하는 독립적이고 개성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어요. 형사나 검사, 조직 보스, 그리고 정치와 경제를 쥐고 흔드는 악의 축도 괜찮겠네요."
유선은 1999년 영화 '마요네즈'로 데뷔한 이후 20년간 연기 외길을 걸어왔으며, 흔한 가십이나 구설수에 오른 적이 한번도 없다. 너무나 똑 부러져, 빈틈 하나 없을 것 같은 '바른 생활' 이미지에 대해 스스로도 갑갑할 때가 있다고 했다.

tvN드라마 '크리미널마인드'에서 화이트해커 나나황 역을 맡은 배우 유선. [사진 tvN]

tvN드라마 '크리미널마인드'에서 화이트해커 나나황 역을 맡은 배우 유선. [사진 tvN]

"지금껏 일탈 한 번 하지 않고 정석대로 살아왔어요. 10년 넘게 교제한 남자친구와 결혼했고, 오래 다져진 인간관계를 좋아합니다. 고루한 성격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걸 선호하는 건 맞아요. 그런 제게 유일한 일탈은 연기예요. 연기만큼은 모험심이 작동해 안해본 것, 어려워 보이는 것에 승부욕이 생겨요. 살면서 해보지 못한 일탈을 연기로 푸는 것 같습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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