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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검찰 ‘적폐청산’ 선봉 섰지만, 국민 57% “수사권조정 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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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대 입장을 밝힌 문무일 검찰총장이 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대 입장을 밝힌 문무일 검찰총장이 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57.3%.’

“쓰임 다한 검찰 이제 개혁 대상” #검찰 출신 야당 의원도 “정 떨어져” #정치검찰 과거 행태에 국민 불신

문무일 검찰총장이 “민주주의에 반한다”며 반대 입장을 냈던 검경 수사권 조정에 과반수의 국민이 찬성한다고 밝혔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CBS의 의뢰로 지난 3일 성인 남성 504명(신뢰 수준 95%에 표본오차 ±4.4%포인트)에게 물은 결과다. 두 달 전 같은 여론조사와 비교해 찬성률이 5.3%포인트 올라갔다. 대검 관계자는 “국민들이 법안의 내용을 잘 몰라서 그런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의 생각을 물었다. 검찰 출신 자유한국당 의원은 기자에게 “내 친정이지만 검찰에 전혀 애정이 없다”고 답했다. 검찰 출신의 다른 한국당 의원도 “검찰과 정을 뗀 지 오래다. 절대 도울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여당이 등을 돌려 검찰에 남은 건 자유한국당뿐이다. 하지만 적폐청산을 몸소 겪은 의원들은 “문재인 대통령보다 검찰이 더 밉다”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의 일등공신은 검찰이었다. 그러던 검찰이 정부 출범 2주년을 앞두고 개혁 대상으로 몰렸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에 올라탄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법안에 검찰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검찰의 쓰임이 다 됐다. 검찰에 대한 정권의 적폐청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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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검찰은 거침이 없었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과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기소했다. 수사 과정에서 이재수 기무사령관과 변창훈 검사가 투신했지만 검찰은 전진했다. 모두 구속하고 기소해 잡아들이면 정치검찰이란 딱지는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을까. 적폐청산의 선봉에 섰던 검찰은 청와대와 여야는 물론 국민들에게서까지 외면받고 있다.

이런 검찰의 모습에 여러 가지 분석이 제기된다. 검사 출신의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두 번의 보수정부에서 벌어졌던 정치검찰의 행태가 너무 심각했다”고 말했다. 아직 국민들이 검찰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폐청산 수사의 피고인을 변호했던 검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가 너무 잔인했다. 검찰이 직권남용이란 법리로 피의자들을 짓밟았다”며 “그러면 국민들은 수사 결과를 납득하기보다 검찰에 대한 악감정만 생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나왔다. 고검장 출신의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잃은 변호사 문재인은 검찰을 불신한다”며 “야당과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는 조국 민정수석이 사실 검찰에 칼을 대려는 대통령을 가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의 지적대로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폐지하는 여야 4당의 합의안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경찰을 견제할 장치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수사권 조정은 개혁이 아닌 권력의 교체에 가깝다. 공수처 설치 법안 역시 위헌적 요소가 상당하다. 그럼에도 그런 법안을 반대하는 검찰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국민의 인권을 우려하는 문 총장의 주장은 귀 기울일 가치가 있다. 문제는 그런 가치를 내세우는 검찰의 목소리에 국민들은 귀를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젠간 봉착할 장면이었다. 하지만 막상 개혁의 대상이 된 검찰 주변에 서겠다는 이들을 찾기 어려운 건 서글픈 현실이다. 패스트트랙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300여 일. 검찰이 국민들의 마음을 돌리고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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