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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존중한다면서 나만 앞세우는 '이기적인 인권'이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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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심각한 인권 논쟁 중 하나는 바로 '젠더' 논쟁이다. [사진 픽사베이]

최근 가장 심각한 인권 논쟁 중 하나는 바로 '젠더' 논쟁이다. [사진 픽사베이]

"한국의 인권은 공존하는 인권이 아니라 '이기적인 인권'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선 그 어느 때보다 인권 논의가 활발하다. 조두순 같은 범죄자 신상 공개뿐 아니라 낙태죄 폐지와 양심적 병역 거부, 미투 문제, 회사 갑질 등 뜨거운 이슈들이 인권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논의 내용은 그다지 성숙하지 못하다. 인권에 대해서도 이분법적이고 양극화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내 처지만 내세우는 인권

신간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북스톤)을 펴낸 구정우(46)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의 인권 의식에 대해 "인권을 인식하는 수준 자체가 낮지는 않지만, '이기적인 인권'만 내세우기 때문에 갈등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기적인 인권'은 우리 사회에 있는 다양한 인권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처한 특정 상황의 권리를 무엇보다 중시하고 내세우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인권 논의가 중간지대 없이 극단으로 치닫는다"고 설명했다. 변선구 기자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인권 논의가 중간지대 없이 극단으로 치닫는다"고 설명했다. 변선구 기자

지난 1일 성균관대에서 만난 구정우 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는데, 우리는 인권은 존중한다면서도 나의 인권만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내가 알고 있는 인권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고 차별까지 할 수 있다"며 "대표적인 사례로는 성 평등 관련 인권에 대해 각자 주장만 펼치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 것을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아직도 이기적인 인권이 만연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인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또한 "현재 한국사회는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인권에 대한 논의가 중간지대 없이 극한으로 치닫는 특징이 있다"고 꼬집었다.

책은 인권에 대한 담론 외에도 현재 논란이 되는 난민 문제, 양심적 병역 거부, 동성 결혼 등 각종 이슈에 숨겨져 있는 인권 코드를 끄집어낸다. 논쟁의 핵심을 먼저 소개하고 각자 입장에 담긴 이론적 배경과 해외 사례 등을 설명해 사안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책에는 다양한 인권 관련 지표가 담겨 있는데, 2015년 구 교수가 개발한 '인권 감수성 테스트' 결과와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매년 업데이트하고 있는 '숫자로 보는 인권(humanrightsdb.com)' 데이터를 반영했다.

젠더 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구 교수는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 논쟁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으로 '젠더' 문제를 꼽았다. 지난해 '미투'로 촉발된 젠더 문제는 논의가 점점 양극단으로 치달으며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이제는 '젠더 전쟁'이라는 표현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다.

신간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를 펴낸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변선구 기자

신간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를 펴낸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변선구 기자

종전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구 교수가 남성 측에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젠더 권력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인정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일부 남성들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젠더 권력을 부정하기도 하는데, 젠더 권력이 한국 사회에 강력하게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일상생활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가부장제도는 성 역할의 편견을 만들어내고 이는 젠더 권력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책에도 나와 있듯, 한국 사회의 성 평등 수준은 국제적 기준으로 볼 때 매우 낮다. 유리천장지수인 남녀의 '경제활동참여율 격차' '남녀 임금 격차' 등은 남녀의 경제적 불평등을 드러낸다. 구 교수는 "일단 젠더 권력의 실체를 인정하고 마주한 다음에야 남녀가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여성 측에게는 일부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과격한 표현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갈등을 부추긴다는 점에서다. 구 교수는 최근 자주 쓰이는 '여성 혐오'라는 표현을 예로 들며 "원래 '혐오'는 종교나 인종 탄압 같은 상황에서 갈등 양상이 집단 폭력 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클 때 쓰이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선 특수하게 여성이라는 일반적인 대상에게 혐오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러한 운동 전략은 남녀를 극단적인 갈등으로 밀어 넣는다는 면에서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여성 인권감수성 높지만 사회안전망은...

나아가 사회 구조적으로는 안전 관련 부분에서 여성의 불안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권 감수성 테스트에 따르면 한국 여성은 평균적으로 인권 감수성이 높지만, 다른 나라 여성과 비교해 사회적인 안전망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유독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범죄자의 인권과 관련해선 불안감이 높아지며 강력히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구 교수는 "이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평소에 자신의 안전에 불안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쓰여져 있는 문구.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에 쓰여져 있는 문구. [연합뉴스]

기업문화 개선은 기업이 앞장서야 

구 교수는 또 다른 한국 사회의 인권 문제로 노동권을 꼽았다. 수직적인 기업 문화가 의사소통을 차단하고 이로 인한 동맥경화 현상은 일터를 병들게 했다. 직장 내 갑질 문제와 노동력 착취 등 노동권을 해치는 문제들은 모두 여기에서 발생한다. 사실 기업문화 개선은 기업이 앞장서 노력하지 않으면 바뀌기 어려운 게 사실인데, 구 교수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라도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종합적인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인권 감수성이 발현되기 위해선 '이성 활동'과 '공감'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이성을 활용해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고 상대를 공감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만 인권 감수성이 높아질 수 있다.

구 교수는 "우리 사회가 중간지대 없이 논의가 극한으로 치닫는 것은 이성이 발현될 수 있는 제대로 된 공간이 없기 때문"이라며 "사회 제도적으로 이성이 발현될 공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 역시 인권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항상 자신이 주장하는 인권이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지 않는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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