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발톱 있다〃 반격 위협 |평민, 옥외집회 등 강경 선회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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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평민당이 서 의원 사건과 관련하여 안기부가 김대중총재를 소환하려는데 반발하여 옥외대중집회를 갖기로 하는 등 강경 투쟁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평민당은 김 총재와 문동환 전부총재에 대한 출두요구서가 발부되자 즉시 의원간담회를 열어 정부를 규탄하는 결의문채택과 함께 이철용 의원연행사건보고대회라는 이름으로 16일 한신대에서 대중집회를 갖기로 했다.
이와 함께 김 총재는 『서 의원 사건을 계기로 평민당을 유일한 선명 야당으로 부각시키겠다』는 결의를 표명하고 있다.
서 의원사건, 터진 직후 대 국민사과성명을 내고 그간 수사에 대해 간헐적인 반발은 보였지만 비교적 신중한 몸가짐을 취했던 평민당으로 서는 눈에 띄는 변화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주요동기는 당의 상징이자 당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김 총재에까지 수사의 손길이 파고 들고 있는데 대한 반발이다.
사실 평민당은 서 의원사건이 당내로 확대되는 가운데에서도 정부당국이 최소한 김 총재까지 수사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여러 상황으로 보아 만일 그러한 국면으로까지 확대된다면 여야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직감적인 발상에서였다.
그러나 정부가 성역 없는 수사를 내걸며 4당 목요사무총장 모임 등 정례적인 대화채널까지 차단하고 당의 심장부를 향해 수사의 손길을 뻗치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막연하게 『갈 마무리되겠지…』라고 수동적으로 정부의 처분만을 기다려서는 안되겠다는 위기감과 함께 결심이 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평민당의 자세변화가 단순히 소환장발부 때문만은 아니다.
평민당도 이 사건으로 정부당국이 김 총재를 구인까지는 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있다.
그럼에도 평민당이 이 국면을 심각히 받아들이고 있는데는 김 총재에 대한 소환장이 상징하는 의미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번 소환장 발부를 계기로 앞으로 전개될 정국구도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는 결론을 반쯤 내린 상태라 할 수 있다.
평민당이 이번 사전에 대한 항의성명을 낼 때마다 『평민당을 와해시키려는 음해의 공작』 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봄 중간평가를 연기시켰던 노태우-김대중회담을 끝으로 평민당과 정부·여당의 거리는 점점 벌어져 왔다.
지난6월의 광주집회, 그리고 김 총재의 1천만서명운동방침과 정권종식투쟁 결의표명 등 일련의 강경한 발언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반면 평민당의 눈에는 민주당의 김영삼, 공화당의 김종필 총재는 상대적으로 노 대통령과 가까워져 가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다 최근 잇단 내각제발언과 보수대연합의 목소리를 심각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평민당 으로 서는 자신을 소외시킨 어떤 모양의 정국이 점점 형성돼 간다는 감을 어렴풋이 잡고 있는 듯 하다.
김 총재가 의원간담회에서 『현 정국은 5공수구세력이 역습하고 있는 상황이며 일부 야당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정부와 야당을 함께 몰아붙인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됐다.
평민당의 당직자들은 요즘 곧잘 『이제는 3노1금 체제가 됐다』고 비아냥거린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런 식으로·4당 구조가 정리되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주장을 서슴없이 펴고 있다.
즉 5공 청산도 안되고 민주화조치도 미흡할 바에야 야당으로 홀로서는 편이 훨씬 낫다는 판단도 깔러있는 것이다.
따라서 김 총재는 최근의 사태가 평민당을 홀로 서게 만드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김 총재가 의원 간담회석상에서 이 같은 자신의 의중을 『행운의 여신은 웃는 얼굴로도 오지만 험악한 얼굴로도 찾아온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평민당이 이번 일을 계기로 단숨에 장외투쟁 외곬으로 밀고 나가 정국을 경색 시킬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사건이 평민당 내부로 확대되면서 많은 당직자들은 강경 노선을 고집했으나 김 총재는 이를 말렸던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김 총재는 『의원20명만 있으면 언제든지 1백%효과를 거두는 강경 투쟁을 할 수 있다. 70명의 의원을 가진 제1야당이니 우선은 지켜보자』며 오히려 온건한 대응을 역설했다.
김 총재가 『금년 연말까지 5공 청산을 지켜보겠다』고 누차 밝히고 있는 점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면서 김 총재는 아직까지 지난4월의 노-김대중회담 당시의 상태로 정국이 복원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또 그가 오랫동안 박해받는 과정에서 벗어나 모처럼 얻은 정치적 기회를 강경 투쟁으로 훼손시키고 싶지 않다는 심정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강경한 몸짓은 정부의 자극에 대한 조건 반사적 반응이며 일종의 호신책 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김 총재는 그때 그때의 고비마다 옥외집회를 정치적 무기로 활용해 왔다.
중간평가연기를 결정할 때의 부천대회나 5공 청산을 촉구하는 광주대회가 그 좋은 예다.
따라서 이런 한신대의 대중집회도 이런 차원의 성격으로『우리도 발톱이 있다』는 점을 내비치고 물러서는 양상이 될 듯하다.
그러면서 평민당은 최근 전교조실태조사를 위해 전국에 중진급의 조사반을 내보내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진짜 장외투쟁을 벌일 수 있는 기반을 쌓아 두길 투쟁의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는 듯 하다.<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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