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e] '내 청춘에게 고함' 김태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지성파로 말하자면 초기의 문성근이나 한창때의 한석규, '왕의 남자' 이전까지의 감우성, 혹은 '살인의 추억'을 제외한 박해일 등이 떠오른다. 김태우도 엇비슷하다. 매끈한 생김새가 그렇고, 철저한 작품분석이 그렇다. 초기에는 곱게 자란 엘리트 이미지였던 그는 최근작에서 나약한 소시민, 혹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위선적인 지식인상을 주로 연기하고 있다.

13일 개봉하는 새 영화 '내 청춘에게 고함'도 마찬가지다. 옴니버스 3편 중 마지막 에피소드의 주연을 맡은 그는 제대 말년 휴가에서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되는 서른 살의 대학강사 인호로 나온다. 꽉 막힌 현실에 답답해 하는 지식인 역할이다.

내 청춘에게 고함은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자 영상원 졸업작품 '나는 날아가고 너는 마법에 걸려 있으니까'로 칸영화제.도쿄영화제 등에서 주목받은 김영남 감독의 데뷔작이다. 오늘의 청춘을 직시하는 감독의 '눈'이 예리하고, 얼굴 낯선 배우들(김태우는 제외)의 호흡도 탄탄하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호평받은 데 이어 10월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 경쟁 부문에도 진출한다. 일본 NHK가 제작비를 지원했다.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 아니냐, '영화제 영화'는 그만해라, 이런 말도 듣는다(웃음). 하지만 난 길게 본다. 이제 데뷔 10년차다. 과정 중에 있는 배우다. 지금은 필요를 못 느끼고 그런 제의가 오지도 않지만 나라고 '두사부일체' 같은 걸 못하겠느냐. 이미지 변신에 대한 강박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건 그의 남다른 행보다. 최근 그는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의 작가주의 영화와 배두나와 함께 한 '굳세어라 금순아', 김인식 감독의 '얼굴없는 미녀' 등의 개성적 상업영화 사이를 빠르게 오가고 있다. 내 청춘에 고함 이후에도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 문소리와 공연한 '사과'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상업영화냐 저예산 독립영화냐, 극중 비중이 크냐 작으냐는 별로 중요치 않다. 시나리오가 좋고 내 취향이면 된다. 상업과 독립,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오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개런티 1만원에 학생영화 단편영화에도 출연할 수 있다. 단 관객들이 영화선택권 확대라는 차원에서라도 이렇게 작고 알찬 영화를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런 그의 태도가 믿음직스럽게 다가왔다. 사실 할리우드에서도 조지 클루니 같은 빅스타가 독립영화의 수호자로 활동하고 있지 않은가.

"감독이 현장에서 대본을 썼는데 홍상수 감독 스타일에 익숙해져선지 편안했다. 인호가 군인이니까 얼굴 태우고 머리 깎았지만 그건 힘든 것도 아니고…. 인호가 너무 감정을 터트리지 않는 게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고 답답했다."

이처럼 자연인 김태우와 극중 캐릭터가 충돌하는 부분은 어떻게 해결할까. "연기란 어차피 배역과 나의 교집합 찾기다. 점점 공통점을 넓혀가는 거다. 어쩌면 인호가 말 한마디 못하는 상황이, 발산하지 못하는 청춘이라는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작품 분석이 뛰어난 배우답게 연기론도 정밀하다. "예전에는 모든 게 시나리오 안에 있다고 생각하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다. 감독이 대본을 뺏을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시나리오에 매달리지 않는다. 내 스스로 인물의 사연과 역사를 구성해 내는 식이다."

글=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