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힘뺀 권은희 공수처법, 판검사 기소는 더 엄격해졌다

중앙일보

입력

사개특위 위원에서 사보임된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25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장실을 빠져나와 이동하고 있다. 오른쪽은 채이배 의원. 김경록 기자

사개특위 위원에서 사보임된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25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장실을 빠져나와 이동하고 있다. 오른쪽은 채이배 의원. 김경록 기자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이 대표발의해 29일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공수처) 법안이 여당의 공수처법과 다른 점은 대통령 인사권의 힘을 빼고 판·검사, 고위 경찰에 대한 기소를 더 엄격하게 제한했다는 것이다.

권은희 공수처법 '플랜B'로 패스트트랙 올라 #판·검사·고위경찰 기소 여부 시민들이 결정 #공수처장 임명시 국회 동의 '필수'도 추가 #"진전된 안" vs "판검사 기소만 엄격해져"

권 의원과 바른미래당은 "시민들에게 기소권을 돌려드린 것"이라 밝혔지만 민주당 내부에선 "이빨 빠진 공수처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여당 관계자는 "권 의원 안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니라 공수처 법안의 최종 본회의 통과까지 협의할 대상으로 본 것"이라 설명했다.

권 의원 법안의 특징은 세 가지로 추릴 수 있다. ① 공수처장 임명시 국회 동의를 반드시 거치도록 한 점. ②공수처가 판·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 기소시 시민들로 구성된 기소심의위원회에 최종 판단을 맡긴 점 ③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 임명 권한을 대통령이 아닌 공수처장에게 부여한 점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법조계의 관심은 권 의원의 법안 중 20대 이상 시민 7~9명이 참여해 판·검사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기소심의위에 쏠려있다.

미국의 기소 대배심 제도를 차용한 것인데 법조계에선 "판·검사 기소만 더 엄격해졌다"는 주장과 "공수처를 시작으로 검찰에도 도입될 필요가 있는 제도"라는 주장이 엇갈렸다.

미국은 형사사건에서 피의자를 기소하기 전 16~23명으로 구성된 배심원 중 12명이 찬성해야 검찰이 피의자를 기소할 수 있다. 검찰과 피의자 그리고 피의자 변호인은 배심원들 앞에서 각자의 입장을 밝힐 기회를 갖는다.

"판검사 기소시만 시민 의견 물어보겠다는 것"

검찰 개혁에 목소리를 내왔던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검찰의 기소권을 제한하는 기소심의위 도입에는 원론적으로 찬성한다"면서도 "공수처는 이미 판·검사, 고위경찰만 기소하기로 합의된 상태라 이들에 대한 기소만 더 엄격해진 것"이라 지적했다.

공수처가 수사는 하되 기소할 수 없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군 장성 등은 시민들의 참여 없이 검사만 기소를 결정할 수 있다. 오히려 공수처의 기소 대상인 판·검사만 일종의 특혜를 받는다는 지적이다.

양 변호사는 "왜 판·검사들만 기소 전 시민들의 판단을 한번 더 받아야 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며 "공수처의 기소 대상이 모든 고위 공직자로 넓혀진다면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이라 말했다.

하지만 바른미래당은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 자체에도 부정적이다. 기소심의위도 공수처 권한을 제한하자는 것이 입법 취지다. 여야 협상 과정에서 공수처의 기소 대상이 확대되긴 어렵다는 뜻이다.

"범죄는 청와대와 국회의원이 더 많이 저질러"

김현 대한변협 전 회장은 "공수처의 핵심 수사 대상은 대통령과 청와대 인사, 국회의원"이라며 "권 의원 법안에도 이들이 기소 대상에서 빠져있는 것은 아쉬운 지점"이라 말했다. 김 회장은 "기소심의위의 취지는 찬성하지만 현재와 같은 공수처가 도입되는 것 자체에 부정적"이라 밝혔다.

부천지청장 출신의 이완규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도 "기소심의위만 놓고 본다면 공수처에서 시작해 검찰까지도 확대를 검토해볼만한 방안"이라 말했다.

현재 여야가 합의한 공수처 법안에 따르면 공수처의 수사대상은 약 7000명, 기소 대상은 5100명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전체회의에서 검경수사권과 공수처 설치법의 패스트트랙이 통과되자 회의장 앞에 누워 항의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전체회의에서 검경수사권과 공수처 설치법의 패스트트랙이 통과되자 회의장 앞에 누워 항의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판·검사, 고위 경찰을 제외한 국회의원 등 다른 고위 공직자는 1900명 정도다. 여야는 수사 대상 중 70%가 기소 대상인 만큼 공수처의 '제한된 기소권'에는 큰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양 변호사는 "판·검사, 고위 경찰의 범죄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며 "오히려 공수처가 현재 기소할 수 없는 국회의원과 청와대 등 권력 기관의 범죄가 더 빈번한데 이들이 기소 대상에서 빠진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순천지청장 출신의 김종민 변호사는 "새로운 사법 제도인 기소심의위를 도입하려면 한국 법체계에서의 효과와 비용 등 오랜 고민이 필요하다"며 "여야가 정치적으로 합의할 사안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같은 사안을 두고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분열된 한국사회에서 판·검사에 대한 기소를 시민들에게 맡겼을 때 올바른 결과가 나올지도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