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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보릿고개 왔나…노동신문 “금보다 쌀이 더 귀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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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 노동신문이 29일 ‘쌀로 당을 받들자’는 제목의 정론을 실었다. 무려 9955자 장문이다.

90년대 고난의 행군까지 언급 #“농업은 사회주의 수호의 전초”

신문은 “금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쌀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하며 “금보다 쌀이 더 귀중하다. 농사야말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천하지대본이라는 심오한 뜻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 제일주의 기치를 더 높이 들고나가고, 사회주의 우리 집을 더욱 억세게 떠받들기 위해서도 결정적으로 쌀이 많아야 한다”고 했다.

내용상으론 쌀 농사에 전력투구하라는 독려이지만 보릿고개 식량난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보릿고개는 지난해 가을 수확한 식량은 떨어지는데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4~5월 춘궁기를 일컫는다.

신문은 20여년 전 고난의 행군(1990년대 후반) 시기도 언급했다. “쌀 한알, 기름 한g이 더없이 귀중했던 고난의 시기에 토지 정리라는 대용단을 내리시고…우리 농민들의 소원을 눈부신 현실로 펼쳐주신 위대한 장군님”이라면서다. ‘위대한 장군님’은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주민들의 기강을 다잡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 내 아사자 수는 200만명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신문은 “중중첩첩 시련과 난관이 막아나섰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 시기 길가에 피여난 뚝감자꽃을 보시면서도 대용식품을 만들어 식량보탬을 하는 인민들 생각에 솟구치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시던 위대한 장군님”이라고도 했다.

미국의 대북제재도 비난했다. 신문은 “농업전선은 우리 사회주의를 고립압살하려는 원쑤들의 발악적 책동으로부터 조국과 인민을 지켜나가는 사회주의 수호전의 전초선”이라며 “모든 힘을 농사에 총집중, 총동원하는 것은 우리 당의 숭고한 뜻”이라고 강조했다.

쌀 농사를 강조한 이날 장문의 정론을 두고 대외 원조를 구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도 나왔다. 전현준 한반도평화포럼 부이사장은 “러시아도 최근 북한에 식량을 지원했다”며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받기 위해 관영매체를 통해 식량난 등 힘든 상황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17년 대북제재가 본격화되며 북한 경제가 힘들어진 건 사실이지만, 쌀 가격이 떨어지고 환율도 안정적이어서 고난의 행군 시절 만큼은 아닌 것 같다”고 진단했다. 고 연구위원은 “쌀 생산량 증대를 독려하는 건 당국이 쌀을 시장에 내다팔아 주민들로부터 외화를 벌어들이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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