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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아듀 블라디보스토크…52시간 여정 급 마무리한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현지시각)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전용열차에 타기 전 러시아 인사들과 대화하고 있다. 2019.4.26/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현지시각)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전용열차에 타기 전 러시아 인사들과 대화하고 있다. 2019.4.26/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오후 3시 30분께 전용 열차 편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났다. 이로써 김 위원장의 약 52시간 동안의 방러 일정은 막을 내렸다.

당초 이날 김 위원장은 오후 10시께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날 것이란 관측이 러시아 현지 매체를 중심으로 나왔다. 25일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마라톤 회담을 가진 뒤 만찬 및 연회까지 소화한 터라 다른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하는 북한 주민과의 만남 및 현지 관광지, 경제 관련 시설 시찰 등의 일정을 26일에 소화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막상 26일엔 사정이 달랐다. 이날 블라디보스토크엔 전날과 달리 빗방울이 떨어지고 기온도 내려갔다. 외부 일정을 소화하기에 쉽지 않은 날씨라는 얘기가 나왔다. 이날 오전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니콜라이 2세 개선문에 설치된 ‘꺼지지 않는 불꽃’에 헌화를 할 예정이었다.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의 넋을 기리기 위한 기념물이다. 실제로 이날 오전 이곳에선 러시아 군 의장대가 환영 행사 리허설을 했고, 김 위원장이 헌화할 것으로 보이는 꽃도 목격됐다. 그러나 오전 10시께 의장대는 갑자기 철수했고 꽃도 치워졌다. 김 위원장이 마음을 바꿨다는 말이 나왔다.

러시아 군 전몰 장병에게 헌화하는 김정은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태평양함대사령부 인근 2차 대전 참전 용사를 추모하기 위한 &#39;꺼지지 않는 불꽃&#39;에 헌화하고 있다. 2019.4.26 [연해주 주 제공]   hkmpoo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러시아 군 전몰 장병에게 헌화하는 김정은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태평양함대사령부 인근 2차 대전 참전 용사를 추모하기 위한 &#39;꺼지지 않는 불꽃&#39;에 헌화하고 있다. 2019.4.26 [연해주 주 제공] hkmpoo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김 위원장은 그러나 마음을 또 바꿨다. 갑자기 ‘꺼지지 않는 불꽃’ 기념물 현장에 나타나 헌화를 했고, 이후 정오께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의 식당 ‘레스나야 자임카’로 향했다. 이곳은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2년 방문했을 당시 블라디보스토크 시장이 환영 조찬을 했던 곳이다. 관련 기념물도 설치되어 있다. 북한으로서는 김정일 위원장과 김정은 위원장의 후계 정통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최적의 식사 장소다.

이후 김 위원장은 당초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 장소였던 극동연방대가 위치한 루스키섬에 있는 해양수족관인 오케아나리움 및 마린스키 발레단의 블라디보스토크 분관인 프리모스크기 스테이지도 둘러볼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이후 일정을 대폭 축소했다. 그가 대신 향한 곳은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이었다.

&#39;코트 사이로 손&#39; 이 행동의 의미는?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북러 정상회담을 마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 앞에서 열린 환송행사에서 코트 안으로 손을 집어 넣고 있다. 2019.4.26   superdoo82@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39;코트 사이로 손&#39; 이 행동의 의미는?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북러 정상회담을 마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 앞에서 열린 환송행사에서 코트 안으로 손을 집어 넣고 있다. 2019.4.26 superdoo82@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김 위원장의 급작스러운 변심과 일정 축소에 대해선 다양한 관측이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익명을 전제로 “타국을 방문한 정상국가의 지도자라면 이런 식으로 일정을 일방적으로, 마지막 순간에 바꾸는 것은 대단한 외교적 결례”라며 “경호에 부담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동선을 바꾸면 그건 상대국에 더 큰 민폐”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이 25일 회담 직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이미 현장을 떠난 상황에서 오래 머무르는 것에 부담을 느꼈으리라는 관측도 있다.

결과적으로 김 위원장과 블라디보스토크 현지 거주 북한 주민의 만남도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엔 북한 파견 노동자들과 유학생들이 상당수 거주한다. 파견된 노동자들은 대북 경제제재로 외화 공급줄이 막힌 북한에 있어선 귀중한 외화 공급책이다.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으로 막히게 된 북한 노동자들의 비자 연장 등의 문제를 요청한 것으로 관측된다. 푸틴 대통령은 실제로 25일 회담 후 단독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북한 노동자들) 관련 얘기를 나눴다”며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이라고만 답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P5)인 러시아의 수장으로서 대북 제재 공조 체제에 균열을 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부담을 느꼈으리라는 관측이다.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뉴시스】이영환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 오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등이 24일 오후(현지시각)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대기하고 있다. 2019.04.24. 20hwan@newsis.com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뉴시스】이영환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 오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등이 24일 오후(현지시각)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대기하고 있다. 2019.04.24. 20hwan@newsis.com

모든 일정을 마치고 26일 오후 3시께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의장대의 환송 사열을 받았다.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러시아 극동ㆍ북극개발부 장관 등도 영접 때와 마찬가지로 나와 김 위원장을 환송했다. 도착 당시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따라 하듯 한 손을 블랙 모직 코트 깃 안으로 집어넣는 모습을 일부러 연출했다. 그의 뒤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과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등이 뒤따랐다. 최선희 제1부상은 이번 일정에서 이동 중에도 김 위원장의 바로 옆에 앉아 수행하는 등 김 위원장의 신임을 한껏 받는 모습이었다.
기차에 올라탄 김 위원장은 활짝 웃는 표정으로 떠나갔다.

블라디보스토크=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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