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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한문으로 쓴 홍길동 일대기 ‘노혁전’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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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호 문집에 나오는 홍길동전. 붉은색 선 안이 제목인 노혁전(盧革傳)이다. 푸른색 선 안은 "성은 홍(洪)이고, 그 이름은 길동(吉同)"이라는 뜻이다. [사진 이윤석 전 연세대 교수 제공]

황일호 문집에 나오는 홍길동전. 붉은색 선 안이 제목인 노혁전(盧革傳)이다. 푸른색 선 안은 "성은 홍(洪)이고, 그 이름은 길동(吉同)"이라는 뜻이다. [사진 이윤석 전 연세대 교수 제공]

약 400년 전 조선 중기 문신이 남긴 문집에서 한문으로 쓴 홍길동전이 발견됐다. 한문 홍길동전이 발굴되기는 처음으로 한글 소설 홍길동전과는 내용도 다르다. 홍길동전이 최초의 한글 소설이며 저자가 허균(1569∼1618)이라는 통념을 깨는 자료로 평가된다.

지난해 10월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를 펴낸 이윤석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지소(芝所) 황일호(1588∼1641)가 쓴 홍길동 일대기인 ‘노혁전(盧革傳)’을 『지소선생문집(芝所先生文集)』에서 찾았다고 24일 밝혔다.

지소선생문집은 황일호의 후손이 1937년에야 간행했는데, 노혁전은 황일호가 전주 판관으로 일하던 1626년에 전라감사 종사관 임게에게 이야기를 듣고 적었다고 한다.

황일호는 노혁전 앞부분에서 “노혁의 본래 성은 홍(洪)이고, 그 이름은 길동(吉同)이니, 실로 우리나라 망족(望族·명망 있는 집안)이다. 불기(不羈·구속을 당하지 않음)의 재주를 품었으며, 글에 능했다”고 써 노혁이 홍길동임을 분명히 했다. 노혁전에서 홍길동은 한글 소설 홍길동전 주인공처럼 도둑 우두머리다. 어머니 신분이 미천하다는 점도 동일하다. 즉 노혁은 홍길동의 다른 이름으로 보인다.

홍길동은 조선 시대에 실존한 도둑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연산군 6년(1500)과 선조 21년(1588) 등 홍길동이라는 이름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1500년 전후 이름을 떨친 홍길동을 놓고 황일호가 후대에 떠도는 이야기를 접한 뒤 모아 쓴 글이 노혁전이라는 게 이 전 교수 주장이다. 이 전 교수는 “노혁전은 전(傳)의 형식을 갖췄지만, 내용상으로는 야담의 전통을 따르고 있으며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다”며 “당시에 전하는 홍길동 관련 이야기를 모두 모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전 교수에 따르면 노혁전은 허균이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줄 수 있는 자료다.

이 전 교수는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라는 근거는 이식(1584∼1647)이 쓴 『택당집』에 등장하는 “허균은 『수호전』을 본떠서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문장에 불과하다면서 현존하지 않는 허균의 홍길동전은 같은 시기 인물인 황일호가 적서차별을 비판하며 기록한 노혁전과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허균이 썼다는 홍길동전과 현대인이 읽는 홍길동전은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전 교수는 “한글 소설 홍길동전은 세상에 전하는 홍길동 이야기를 바탕으로 1800년 무렵 알 수 없는 어떤 작가가 창작했다고 봐야 한다”며 “한글 소설 홍길동전에는 허균의 사상이 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대목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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