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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전쟁-차도에도 "슬쩍"교통체증 가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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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주차전쟁에 전국의 도시가 몸살을 앓는다. 「마이카」붐을 타고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자동차에 시설이 따르지 못해 빚어지는 당연한 현상이다. 불법주차가 도시기능까지 마비시킬 정도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자 정부는 7월부터 일정기간 계몽을 거쳐 일제단속을 벌일 방침이다. 그러나 대안 없는 단속이 얼마나 실효를 거두게 될지는 의문이다. 대도시들 중에서도 주차문제가 가장 심각한 서울을 중심으로 실태, 그리고 문제점등을 진단해 본다.

<길 막고 주차>
10일 오전 서울 예관동 중구청 앞. 80여대밖에 들어설 수 없는 구청주차장은 이 구청자체차량이 이용하기에도 비좁아 구청 앞 큰길 건너편 1차선을 노상주차장으로 만들었으나 구청업무가 시작되는 오전9시가 되자 30여대 규모의 노상 주차장은 이미「만원사례」.
오전11시. 민원인 들이 타고 온 차량들이 몰려들어 구청정문 앞 도로변에 불법주차 대열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각종 상가가 늘어서 있는 을지로 쪽 차도변엔 주차금지 표시에 아랑곳없이 2차선까지 불법주차 대열이 2겹 3겹으로 늘어선다. 단속경찰은 인도 쪽 1개 차선은 단속을 아예 포기(?)한 채 2차선 단속에도 땀을 흘린다.
『택시를 타도 큰길에서 내려야지, 집까지는 들어갈 수가 없어요.』
서울 상도동 강남시장 옆 주택가 골목길. 큰길에서 중앙대 후문에 이르는 폭 8m도로2백여m 구간은 2∼3년 전부터 주로 승용차 주차장으로 변하기 시작해 이젠 발 디딜 틈 없는 「노상주차장」이 돼버렸다.
주민 임모씨(51)는 『길이 막히는 것도 문제지만 어린이 교통사고 위험과 불이 났을 때가 더 큰 문제』라며 당국에 대책을 호소했다.
아파트단지도 주차전쟁은 마찬가지.
전체 2백28가구 규모인 서초동 S아파트의 경우 주차시설은 1백20대뿐인데 입주민 소유차량은 1백70대나 돼 녹지에까지 차를 세워 출퇴근 때면 「차대기」 「차 빼기」소동으로 홍역을 치른다.
20평 미만의 소규모 아파트가 대부분인 역삼동 Y아파트도 전체 5백여 가구 중 소유차량은 3백여대나 돼 주차공간부족으로 아파트 앞 도로에까지 차를 세우고, 대치동 E아파트는 최근 단지 내 빈터에 2백여대 수용규모의 주차장을 새로 만들어 낮엔 놀이터로, 밤엔 주차장으로 쓰고있으며 압구정동 H아파트는 테니스코트를 주차장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 같은 주차시설 부족 사태 속에 회사·아파트 할 것 없이 주차권제가 도입돼 사원·비사원, 주민·비주민을 가리는 스티커제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 여의도동 D증권은 올해부터 주차장을 층별로 나눠 30대 규모의 지하2층은 부장급 이상 간부용, 지하3층 80대 분은 일반직원, 옥외 40대 분은 고객용으로 나눴고 종로3가 S건설은 6월부터 과장급 이상만 월5만원을 받고 주차를 시키는 대신 평직원은 일체 금지시키고 있기도.
주차장 확보전쟁도 치열해 자체 주차시설이 30대 규모뿐인 소공동 K기업은 5백여m 떨어진 정동 옛 배재고 부지 6백평을 임대, 사원용 주차장으로 확보한 뒤 출퇴근 때에는 봉고차를 동원, 회사∼주차장을 오가며 손수 운전사원들을 실어 나르고 있고, 관훈동 S빌딩은 15층 연건평 3천여평으로 유동인구가 하루 4천여명에 이르고 있으나 주차장이 없어 1백여m 떨어진 사유지 1백30평을 입주업체들이 공동으로 빌려쓰기도.
서울시내 80여개 아파트단지 관리소장 50여명은 최근 주차대책 회의까지 열었고 지역적으로 아파트·상가·사무실 등이 인접해있는 강남 일부지역에서는 낮엔 사무실·상가이용 차량, 저녁엔 아파트주민 차량을 각각 주차케 하는 제도도 추진하고있다.
부족하나마 전용시설을 갖춘 업체·아파트는 그래도 다행이다. 「기댈 곳이 없는」상인·소규모 건물입주자 등이 몰리는 공용주차장은 주차권 사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주차능력 6백대 규모인 종묘 주차장의 경우 매월 다음달 한 달치 정기 주차권 판매 때는 새벽4시부터 줄을 서도 차례가 돌아오기 어려울 정도여서 지난 4월엔 이 「줄서기」가 흐트러져 격렬한 항의소동까지 일기도 했었다.
가뜩이나 좁은 도로의 불법주차는 교통체증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잦은 사고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지난 4월25일 오후11시 이문동 2차선 도로에선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시민이 불법 주차한2.5t 화물트럭을 미처 보지 못하고 들이받아 숨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8년 새 4배>
80년 20만대에 불과하던 서울시내 차량이 불과 8년 사이 4배 이상인 80만대를 넘어 섰으나 주차시설은 34만대 수준이어서 주차는 물론 밤에 차를 세워두는 박차도 절반이상이 불법일 수밖에 없다.
특히 도심은 전체 시설의 15%인 5만대 규모에 불과해 주차난이 더욱 심한 것은 당연한 결과.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청계천·을지로의 3∼5가는 시설은 2천대 규모이나 수요는 5천대가 넘어 매일 1천대 이상의 불법주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
주차장 형태별로는 움직이는 차량수용에도 바쁜 도로 위의 노상주차장이 9천6백12대분, 외부개방이 어려운 건물부설 주차장이 29만3천여대 분이며 공영 노외 주차장이라고는 6천여 대분에 불과한 실정.
지난해 서울시가 1천7백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불법주차의 이유를 「못 찾아서」가 40%로 가장 많았고,「거리가 멀어」(22%), 「요금이 비싸」(17.8%), 「단속허술」(7.5%)등의 순으로 나타난바 있다.

<당국의 단견>
자동차 문화가 정착되기 전에 짜여진 도시기반 시설이 원천적인 문제이나 행정당국의 무정견·단견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서울시의 경우 현행 주차장법상 상업지역에는 건평1천평방m 이상 되는 건물에 한해서만 1백50평방m에 1대씩의 주차시설을 두게 한 것을 넘어서서 시 조례로 건물을 용도·지역별로 구분해 그 기준을 강화하고 대형건물에 대해서는 교통영향평가제를 도입, 더욱 강화시켰으나 현실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관공서의 경우 자체보유차량 외에 민원인 차량 등 주차수요가 어느 시설보다 많은데도 대부분의 관공서가 교통영향 평가제를 받아야 하는1만5천평방m(도심)∼3만평방m이하(외곽) 여서 법정기준만을 확보, 관공서 앞이 불법주차의 온상이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아파트도 주차기준이 점차 강화되고 있긴 하나 서울시내 거의 모든 아파트단지 시설기준이 입주민 차량 보유대수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있다.
더욱이 1백50평방m이하의 소형건물과 단독주택 등에 관해서는 주차시설 규정이 없어 주차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있다,
또 주차시설 규정이 없던 68년에 세워진 종로3가 H빌딩의 경우 10층 규모에 연건평 1천6백여평이나 되는데도 주차장이 설치돼 있지 않는 등 특히 오래된 건물의 주차문제가 심각한 실정.
서울시는 이에 따라 84년부터 이같이 주차시설이 없거나 부족한 건물에 대해 추가설치 명령제도를 신설했으나 막상 주차장을 새로 만들 공간이 없는 데다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제재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없게돼 있다. <민병관·오장영·안남영·임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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