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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 발표에 "포퓰리즘" VS "교육기본권"…둘로 나뉜 안산

중앙일보

입력

지난 17일 윤화섭 경기도 안산시장이 "안산시 대학생 반값등록금 지원 조례를 제정해 이르면 올 2학기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히면서 지역 민심이 둘로 갈렸다.

조례 시행일 전 1년 이상 안산시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는 가정의 대학생에게 등록금 절반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전북 부안군 등 일부 군 단위 지역에서 반값등록금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긴 하지만 수도권, 시(市) 단위 지자체에선 안산시가 처음이다.

지난 18일 반값 등록금 정책을 발표하는 윤화섭 안산시장. [사진 안산시]

지난 18일 반값 등록금 정책을 발표하는 윤화섭 안산시장. [사진 안산시]

반값등록금 대상자 수만 2년제 대학생 5418명, 4년제 대학생 1만4873명 등 2만291명. 안산시는 먼저 다자녀 가정과 장애인·저소득층 학생을 우선 지원하고 재정 여건에 맞춰 지원 규모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2022년쯤엔 모든 대학생에게 혜택을 준다는 계획이다. 이를 놓고 "교육복지 차원에서 당연한 것"이라는 의견과 "현금 살포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이 엇갈리고 있다.

"교육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안산시는 반값등록금 계획을 발표하면서 "교육 복지"를 언급했다. 윤 시장은 "요즘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으로 학업과 미래를 설계하는 데 전념하지 못하고 있다"며 "가정에서 줄어든 교육비가 학생 개개인의 소질 향상에 재투자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욱 밝아지고 안산도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교육하기 좋은 도시로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시의회 김동규 의장(더불어민주당·가 선거구)도 "대학생들의 학비 부담이 무척 큰데 시에서 교육복지 차원에서 학비를 지원하면 각 가정의 부담도 덜 것"이라고 환영하며 "다만 등록금 수요 예측이나 재정 부분은 면밀하게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1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소속 대학생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등록금심의위원회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서 등록금심의위원회의 중립적인 운영과 학생 참여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스1]

올해 1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소속 대학생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등록금심의위원회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서 등록금심의위원회의 중립적인 운영과 학생 참여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스1]

"세금으로 등록금? 말도 안 된다"

하지만 반발도 거세다. 특히 안산시가 반값등록금을 감당할 재정적 여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많다.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대학생 1명당 연간 평균 등록금 자부담액은 329만원이다. 안산시는 여기의 절반 수준인 평균 165만원에서 최대 200만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안산지역 전체 대학생 2만291명에게 등록금을 절반씩 지원하면 335억원 정도가 든다. 올해 안산시 본예산 2조2164억원인 만큼 전체 예산의 1.5% 수준이다.
안산시는 다자녀 가정·장애인·기초생활수급 학생 3945명에게 지원되는 29억원가량의 사업비를 먼저 제2회 추가경정 예산안에 반영할 계획이다.

윤 시장은 "유사중복 사업과 불필요한 경상경비를 줄이고 고액 체납액 징수를 강화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차갑다.
강주원(33·안산시 단원구)씨는 "대학은 의무교육이 아닌 선택적 교육인데 왜 세금으로 등록금을 지원해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교 졸업 후 취업을 한 청년들과의 형평성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안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고선영 사무국장도 "안산시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반값등록금을 도입하겠다는데 이 정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안산 출신 청년들이 대학을 나와서도 모두 안산에 정착해야 하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차라리 청년 일자리 대책이나 가족들이 집단 이주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 인구 증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산시의회 김정택(자유한국당·가 선거구) 의원은 "의회와 사전 협의 없이 발표한 정책"이라고 반발하며 "전년도 안산시 재정운영 연구용역을 보면 2022년 이후부터는 시 재정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 번 시작된 복지 사업은 무조건 계속해야 한다. 등록금 인상 등 변수로 인한 재정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럼에도 안산시는 조례 제정을 위해 이달 내로 보건복지부, 경기도와 협의에 들어가고 시의회와 주민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이후 입법예고, 조례 제정 등 행정 절차를 거친다는 입장이다. 현재 안산시의회는 전체 의원 21명 중 14명이 윤 시장과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안산시청 전경 [사진 안산시]

안산시청 전경 [사진 안산시]

보건복지부 협의 결과가 시행 관건

변수는 보건복지부다. 사회보장기본법은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경우 신설 또는 변경의 타당성, 기존 제도와의 관계, 사회보장 전달체계에 미치는 영향 및 운영방안 등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문제를 제기하면 사업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앞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추진한 청년복지공약인 '생애 최초 청년 국민연금 지원사업'도 보건복지부의 '불가' 판정으로 스톱됐다. 경기도 청소년이 만 18세가 되는 달의 국민연금 보험료(9만원)를 지원하는 제도인데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제도 취지와 맞지 않고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 등을 들어 '불허' 판정을 내렸다.

경기 성남시도 산업단지의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청년들에게 산업통상자원부가 지급하는 5만원에 시 비용으로 월 5만원의 교통비를 추가 지원하려다 제동이 걸렸다. 보건복지부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기존에 지원하는 대상과 성남시가 추가 지원하려는 대상이 겹친다"며 중복지원 문제를 제기한 상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11일 안산시에서 받은 제안서는 다자녀·저소득층 등이 대상이었는데 기자회견을 보니 범위가 늘어나 수정해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며 "전문가 의견 등을 수렴해 잘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안산=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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