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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m 첨탑이 무너지는 순간 내 가슴도 무너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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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6일(현지시간)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진화 후 촬영된 ‘장미 창’. [AFP=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진화 후 촬영된 ‘장미 창’. [AFP=연합뉴스]

첨탑이 무너지는 순간, 내 가슴도 무너졌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솟아있지 않은 화염 허공을 망연자실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게 파리는 곧 노트르담 대성당이었다. 지금 내 눈 앞에서 파리가 불타고, 파리가 눈물 흘리고 있었다. 내 청춘 시절, 아니 누군가의 꿈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순간을 꼼짝없이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이것은 설마, 꿈은 아닐까.

함정임이 말하는 노트르담 #에스메랄다와 종지기 꼽추 사랑 #『노트르담 드 파리』 추억의 무대 #재건 통해 또다른 대성당 시대 열길

파리의 모든 길은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통한다. 프랑스 시인 폴 클로델이 한 말이다. 동시에 이 말은 보름달 형상의 창문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의 고딕식 쌍탑을 보면서 20대의 한 시기를 보냈던 내 무의식의 고백이기도 하다.

화재 전 장미 창의 모습. ‘장미 창’은 고딕양식의 크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둥근 모습이 장미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EPA=연합뉴스]

화재 전 장미 창의 모습. ‘장미 창’은 고딕양식의 크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둥근 모습이 장미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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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에 처음 도착했던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30년 가까이 파리에 드나들면서,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도착과 떠남의 인사로 노트르담 대성당을 찾아가곤 했다. 마치 먼 길을 떠나기 전이나 먼 길에서 돌아와 어머니께 안부 인사드리듯이. 가톨릭 신자가 아닌 내가 노트르담 대성당에 품어온 이러한 마음은 ‘어떤 형언할 수 없는 세계로의 끌림’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내 몸이, 내 감각이, 내 영혼이 노트르담 대성당 쪽으로 향하도록 이끌어준 선례들이 있다.

무사한 것으로 알려진 ‘가시면류관’. [로이터=연합뉴스]

무사한 것으로 알려진 ‘가시면류관’. [로이터=연합뉴스]

빅토르 위고는 말했다. “파리를 들이마시는 것, 그것은 영혼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 그는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1831)에서 미와 추, 성과 속,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진리를 증명해냈다. 떠돌이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향한 신분도 나이도 다른 세 남자, 대성당의 종지기 꼽추, 파리를 지키는 청년 근위대장, 그리고 대성당 사제의 치명적인 사랑과 혁명의 무대가 노트르담 대성당인 것이다. 위고가 이 소설을 쓸 당시, 노트르담 대성당은 혁명이 휩쓸고 간 황폐한 파리의 한 장면으로 오랫동안 방치상태였다. 위고의 소설이 대성공을 거두자 세상의 관심이 하늘을 찔렀다. 대중의 사랑에 힘입어 ‘비올레 르 뒤크’(복원 건축가) 첨탑이 추가 건설됐고, 육중한 고딕식 석탑에 날렵한 세련미를 더하면서 완벽한 건축미를 갖추게 되었다. 제2의 노트르담 대성당 시대가 펼쳐졌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국문학에서 파리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쓴 사람은 문학평론가 김윤식이다. 그에게도 파리란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통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순간 노트르담 대성당과 마주했지만, 나에게 ‘노트르담 대성당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깨닫게 한 것은 모리 아리마사(일본 출신 불문학자)라는 파리의 이방인을 추적한 김윤식의 사유였다. 이방인에게 노트르담 대성당은 한갓 차가운 돌덩어리가 아닌, 어머니와 같은 비물질적인 위안과 꿈의 대상, 영원히 살아 있는 몸의 생명체이다. 위고의 소설에서 비롯된 비올레 르 뒤크 첨탑은 세상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는 여전히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통한다. 제3의 노트르담 대성당 시대를 꿈꾸며….

함정임

함정임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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