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원전해체산업, 정부 말대로 차세대 먹거리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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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축하할 일인지 잘 모르겠다. 동남권에 처음 짓는다는 ‘원전해체연구소’ 얘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5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에서 한국수력원자력과 지방자치단체 대표가 모인 가운데 원전해체연구소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원전 해체 산업의 전진기지가 될 연구소를 고리원전(경수로 담당)과 경주(중수로)에 각각 세운다는 내용이었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원전 해체 산업을 새로운 먹거리로 육성키로 한 데 따른 수순이다. 기자는 이날 행사가 세 가지 측면에서 씁쓸했다.

먼저 진짜 ‘새 먹거리’가 맞느냐는 점이다. 정부는 원전 해체 산업이 ‘블루 오션’이라고 소개했다. 이미 가동을 멈춘 고리원전 1호기를 비롯한 국내 원전(30기) 해체 시장 규모만 22조5000억원, 현재 가동 중인 전 세계 원전(453기) 해체 시장 규모는 550조원에 달한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하지만 발굴하지 않은 시장이라고 해서 모두 블루 오션은 아니다. 뛰어들 가치가 있고, 우리에게 경쟁력이 있어야 블루 오션이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전 1기를 해체할 때 1조원 가까운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 중 대부분이 폐기물 처리비”라며 “원전 해체는 결국 폐기물 처리 산업이라 부가가치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쟁력을 갖췄는지도 의문이다. 한수원은 원전 해체 관련 한국 기술력이 미국의 60%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연구소를 두 곳에 나눠 짓는 것도 비효율이다. 단독 유치를 희망하던 부산 기장군은 이날 MOU 체결식에 불참했다. ‘지역 나눠 먹기’란 지적에 대해 주영준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중수로와 경수로는 원자로 형태 및 폐기물 종류 등이 서로 달라 별도의 기술·장비가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전문가 생각은 다르다. 성풍현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자동차 종류가 다르다고 서로 다른 정비소로 보내야 하느냐”며 “기술적으로 80% 이상 중복되는 만큼 경수로·중수로 해체 연구소를 분리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씁쓸한 건 잘하던 ‘공격수(원전)’를 뒤로 빼고 신참 ‘수비수(원전 해체)’를 키우겠다고 나선 점이다. 원전 해체는 원전 산업의 ‘파생 상품’이다. 산업 육성이 명분이라면 해체 산업은 이미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고 수출 시장을 누비던 원전 산업(600조원 규모)과 비교 불가다. 원전 해체를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원전 산업 본연의 가치도 함께 키워야 하지 않을까. 이날 행사를 지켜본 고리원전 1호기도 한 때 대한민국 ‘산업 역군’으로 불렸기에 하는 얘기다.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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