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막냇동생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한진칼의 지분을 인수할 계획이 없다는 뜻을 15일 밝혔다. 조 회장은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을 통해 이같은 입장을 전했다.
이날 김 부회장은 한국경제에 "메리츠금융그룹은 전업 금융그룹으로 앞으로도 금융에만 전념할 계획"이라며 "한진칼 지분을 인수해 백기사나 흑기사 역할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김 부회장은 이날 인터뷰에 대해 "철저한 중립을 지키겠다는 조정호 회장의 확고한 의지를 대신 전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조양호 회장의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등 한진그룹 오너 일가는 현재 경영권 지키기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조 사장이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을 상속 받으려면 2000억원 가량의 상속세를 내야 하는데, 현재로써는 다른 계열사 지분을 매각해도 상속세를 낼 여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진칼 지분은 조양호 회장이 17.84%, 조원태 사장이 2.34%,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각각 2.31%, 2.30%를 갖고 있다. 현재 한진그룹 2대 주주는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KCGI로, 한진칼 지분 13.47%를 보유하고 있다. KCGI는 한진칼 지분 매입을 통해 대한항공 경영권에 적극 참여하려는 의사를 가진 펀드사다.
조정호, 장례 2일차에 조문…조양호 회장과 악연
조정호 회장이 이런 입장을 밝히기 전부터 재계에서는 조정호 회장이 한진그룹을 도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한진가 형제의 사이가 평소에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2년 아버지 조중훈 회장이 별세한 뒤 한진가 네 형제(조양호·남호·수호·정호)는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특히 조정호 회장은 선친의 유언장이 조작됐다며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정호 회장의 실리주의 노선도 이번 중립 선언에 한몫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정호 회장은 네 형제 중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한진중공업 위기 때 "회삿돈은 내 돈이 아니다"라며 형의 도움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남호 회장은 실적 부진으로 인해 최근 경영권을 상실한 상태다.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은 2006년 사망했다. 그래서 한진그룹을 도울 여력이 있는 건 조정호 회장이 유일했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조정호 회장은 조양호 회장의 빈소가 차려진 지 이틀 만에 조문을 하고 갔다.
"금산분리 원칙 때문…개인 지원도 안 해"
조정호 회장이 한진그룹 경영과 관련해 중립을 지키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정호 회장의 뜻을 공식 전한 김 부회장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금산분리 원칙이 있는 상황에서는 메리츠금융그룹뿐만 아니라 대주주인 조정호 회장 개인 자격으로도 제도적으로 (한진칼에) 투자할 수 없다"고도 밝혔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24조는 대기업집단 금융회사가 비(非)금융 계열사 지분을 5% 이상 취득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이어 "선대 회장이 창립한 기업이어서 조정호 회장도 당연히 한진그룹이 잘됐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면서도 "그것은 선대 회장에 대한 마음일 뿐 현실적으로 투자 의사 결정과는 연결할 수 없다는 것이 조정호 회장의 뜻"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회장은 조정호 회장이 조카인 조 사장을 돕기 위해 다른 우호적 투자자를 설득하는 등의 계획도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정호 회장은 어떤 방법이든지 조 사장을 지원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조정호 회장이 중립을 선언하면서 조 사장이 대한항공과 협력 관계인 미국 델타항공 등 외국 기업이나 금융회사로부터 지원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고 조양호 회장의 장례는 16일 마무리됐다. 한진그룹 일가는 이날 오전 조 회장의 발인을 마쳤다. 이날 발인식에는 조정호 회장도 참석했다.
조 회장의 운구차는 서울시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를 둘러본 뒤 장지로 향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