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문 대통령에 주문한 '당사자'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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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미국을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남북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진행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북한의 형편이 되는 대로 장소와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남과 북이 마주 앉아 두 차례의 북ㆍ미 정상회담을 넘어서는 진전된 결실을 맺을 방안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 두 번째)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왼쪽 두 번째)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이행하고, 한ㆍ미 정상회담 결과를 논의하자는 정상회담 제안으로 풀이된다. 통상 남북 정상회담은 물밑에서 실무접촉을 통해 진행한 뒤 양측의 뜻이 모이면 공개됐다. 지난해 5월에는 “내일 만나자”고 해 긴급 정상회담도 열렸다. 남측 정상 간 핫 라인이 구축된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공개적으로 회담을 제안한 건 이례적이다.

이는 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측과 미국을 향한 북한의 마뜩잖은 분위기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정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북측과 접촉을 진행하고 있지만, 쉽사리 진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북한 비핵화 협상을 위한 중재에 나섰지만,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쉽게 응할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전직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밝혔듯이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며 “아직 특사가 가지도 않고,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는 얘기는 사전에 정부가 물밑에서 접촉을 시도했지만, 북측이 호의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에서 초헌법적인 지위를 갖는 김 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남측의 당사자 역할을 주문하며 불만을 보였다는 점에서 북한이 한국 정부를 대하는 입장이 바뀐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남측의 중매에 의지하던 기존 패턴에서 벗어나 남측과 ‘거래’를 하더라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즉 남측이 플레이어로 역할 할 수 있는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북한이 비핵화 상응 조치와 관련해 그동안의 대북제재 해제 중심의 요구에서 탈피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연구원의 최용환 안보전략연구실장은 “하노이 회담이 ‘안보 대 경제적 보상조치’의 교환(구도)이었다면, 북미 간 교환할 콘텐츠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북한이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와 관련해 진전을 보이지 않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이 녹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도 재개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비핵화를 위한 중재를 하느냐는 불만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며 “북한은 신년사를 정책의 지도지침으로 삼고 있는 만큼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금강산 관광 재개를 독려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입장에선 남측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대북제재에 참여하고 있는데, 대북제재의 당사자로서 제재의 틀을 넘어서는 협력(경협)에 나서달라는 주문이라는 얘기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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