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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노동법 까다로운 코스타리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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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코스타리카는 같은 카리브연안국가지만 이웃 멕시코·도미니카 등과는 모든 여건이 전혀 다른 나라다.
우선 공항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전부가 백인으로 혼백 혼혈이 대부분인 다른 중남미국가들과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코스타리카는 스페인계 백인이 전체인구의 95%를 차지하고 있어 아르헨티나·칠레와 더불어 중남미에서 몇 안 되는 순수 백인국가다.
공항을 떠나 수도 산호세로 향하는 길목은 청명한 하늘을 끼고 높은 산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10월 한국의 가을을 연상케 한다.
나라전체가 해발1천2백∼1천5백m의 고원지대로 섭씨 20도의 상춘 기온을 거의 1년 내내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코스타리카는 미국에서 정년 퇴직한 노인들이 여생을 보내는 휴양기로 유명하다.
산호세 거리는 미국의 중소도시를 연상하리만큼 깨끗했고 중남미 어느 국가서나 흔히 볼수 있는 판자촌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은 경제가 후퇴했지만 70년대 한때 1인당 GNP가 2천 달러를 육박했던 중남미 선진국가로서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곳이 최근 2, 3년 사이 카리브연안국가 중 도미니카와 더불어 한국기업의 주요진출대상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코스타리카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삼성물산, 신성통상(대우그룹 계열), 코쎄코(선경 파나마지사 자회사), 복흥 등 12개 업체로 도미니카의 16개 업체에 필적하고 있다.
코스타리카에서 가장 큰 칼타고 공단에는 40개 입주업체 가운데 8개가 한국계 기업일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코스타리카는 투자여건상 도미니카에 비해 불리한 점이 많다.

<순수한 백인국가>
인구가 2백60만명으로 가용 노동력이 적고 월 평균 임금은 5백 달러로 도미니카의 최저임금 80달러에 비해 6배가 넘는다.
코스타리카는 철저한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해 국가경제를 운영한다.
도미니카처럼 국가가 공단을 개발해 관리하지도 않고 의욕적으로 경제개발계획을 세워 추진한 적도 없다.
한국업체가 많이 입주해 있는 칼타고 공단도 이탈리아계 재벌 제타그룹이 개발, 평방m당 평균 2달러의 비싼 임대료를 받아 재미를 보고있는 곳이다.
따라서 경상운영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코스타리카는 또 출입국 관리가 무척 까다롭다.
백인국가의 혈통을 지키려는 듯 밀입국자를 철저히 막고 장기 체류자에 대한 감시를 게을 리 하지 않는다.
장기체류가 가능한 취업비자를 얻기가 아주 어려워 이곳에 진출한 한국기업 근무자들은 대개 3개월간 방문비자를 받고있다.
취재팀이 어느 한국인업체를 방문했을 때 마침 이민국직원 2명이 한국인 근무자를 열심히 조사하고 있었다.
3개월 이상 된 체류자를 찾고있는 중이었다. 경제부흥을 위한 외국인업체 유치와 불법 체 류자 적발은 별개의 문제라는 자세다.
게다가 코스타리카는 노동법이 까다롭기로 세계에서 유명하다.
하기 싫다는 일을 억지로 시켜도「정신적 압박으로 상대방을 학대」했다는 노동법 조항에 저촉될 정도다.
한 회사에서는 화장실이 좁다는 사소한 이유로 노동청에 의해 형사 고발돼 감사를 받고있다고 했다.
『원화 절상·임금상승 등 갑자기 밀어닥친 3고 현상으로 준비 없이 해외진출대상 지역을 찾아 카리브연안국가를 뒤지다가 코스타리카의 겉모습에 반해 무턱대고 투자를 결심하는 기업인들이 종종 있습니다만 자칫 후회하게 됩니다.
전유진 현지무역관장은 철저한 정보 없이 겉만 보고 이곳을 투자대상지역으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충고한다.
실제로 진출 2, 3년이 된 업체 중 제대로 수지균형을 맞추고 있는 회사는 2개사에 불과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코스타리카가 이웃 도미니카에 비해 투자환경 면에서 유리한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고교까지 무상교육을 실시, 문맹률이 7%에 불과한 만큼 노동력의 질이 좋고 민주주의의 정착으로 여타 중남미 국가와는 달리 정치·사회적으로 안정이 되어있어 투자에 대한 위험부담률이 극히 적다.
삼성물산이 지난4월 진출에 앞서 실시한 시장조사를 보면『도미니카는 미국의 섬유류에 대한 광범위한 쿼타 실시가 예상되어 부적합하고 자메이카는 노동의 질이 낮고 노조의 영향력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며 과테말라는 정치불안과 부정부패 및 통신상태 불량 등의 문제가 있는 반면 코스타리카는 정치·사회적 안정과 양질의 노동력에 의한 높은 생산성 등 바이어의 선호도가 높은 지역』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맹률 불과 7%>
코스타리카에 삼성물산·신성통상·선경자회사 등 대기업이 다른 중남미국가에 비해 많은 것은 대규모 투자에 대한 안전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코스타리카는 또 미국의 섬유 쿼타 제한이 비교적 적다.
현재 쿼타로 묶여있는 품목은 면제 및 화섬제 셔츠, 면제품 바지, 면제 및 화섬제 스커트 등 3가지뿐이다.
따라서 고부가가치의 품목선택을 잘하면, 높은 임금을 생산성으로 커버해 충분히 승산 있는 사업을 벌일 수 있다.
중소기업체인 (주)진이는 고가의 여성용 블라우스 및 드레스를 만들어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다.
한국에서 실크와 폴리에스터 제품을 만들던 이 회사는 원화절상·임금상승 등으로 폴리에스터 제품이 가격경쟁력을 상실하자 87년 3월 칼타고 공단에 대지 1천1백평, 건평 4백평의 공장을 5년간임대로 얻어 해외진출을 시도했다.
폴리에스터 제품이지만 피스당 최저 15달러에서 최고 50달러나 받는 고부가가치의 하이패션물 이었다.『처음에는 모두 말렸습니다. 코스타리카의 노동력으로는 이런 고급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현지종업원 1백명을 데리고 2개 생산라인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노동력의 질이 뛰어나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였습니다.
김영호 현지사장은 미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여타 중남미 국가에서는 생각도 못하는 고가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해내니까 미국에서 호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자체 브랜드인「하나성」으로 일부를 수출하고 나머지 일부는 OEM(주문자 상표부착)방식으로「엘라이드」「몽고메리워드」「제이 씨페니」등 회사에 납품했다.

<자체상표로 수출>
회사는 설립 1년만에 종업원 3백30명, 생산라인 4개로 2배 이상 늘어났고 월 생산량 블라우스 1만5천피스, 드레스 7천피스로 88년2백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지만 밀리는 주문량을 미처 못별 정도였다.
바이어들은 상공부·무역진흥공사 등에『이런 공장을 코스타리카에 좀더 크게 지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고 88년3월 현지조사차 이곳에 들른 황창기 수출입은행장은『미국에 싸구려 제품만 만들어 파는 회사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비싼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있는지 몰랐다』며 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수출입은행은 1백75만 달러를 융자지원 했고 회사는 여기에 자체자금을 보태 2백50만 달러를 마련, 칼타고 공단에서 7㎞떨어진 파라에소에 대지 1만3천평, 건평 3천3백평의 대규모 공장건설에 착수했다.
특히 공장부지를 30만 달러에 매입, 임대신세를 면하게되었다.
올해에 공장건물이 완성되고 92년까지 20개 생산라인을 설치, 풀 가동에 들어가면 고액다품종 위주로 연간 2천만 달러 이상의 수출실적을 올리겠다는 것이 회사측의 야심만만한 계획이다.
(주)진이는 철저한 정보 수집으로 나라별 특성을 파악, 적절한 아이템을 선정함으로써 해외진출로 새 활로를 찾고있는 섬유업체에 귀중한 성공사례를 남겨주고 있었다. <글 한종범 기자|<사진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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