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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약병과 주삿바늘 자국 두 개…‘링거 사망사건’ 진실은?

중앙일보

입력

프로포폴. [중앙포토]

프로포폴. [중앙포토]

지난해 10월 20일 오후 A씨(30)는 여자친구 B씨(31)와 밥만 먹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다음 날 A씨는 경기도 부천시 한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함께 있던 B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21일 오전 11시30분쯤 모텔 내부에서 빈 약물 병 여러 개를 발견했다.

지난해 10월 부천 한 모텔서 A씨(30) 숨져 #경찰 촉탁살인 혐의로 여자친구 검찰 송치

A씨 오른팔에는 두 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있었다. A씨의 사인은 소염진통제인 디클로페낙 투여에 따른 심장마비였다. 디클로페낙은 심근경색증과 뇌졸중 위험을 높이는 약물이다. 부검 결과 체내에서 마취제인 프로포폴과 리도카인, 소염진통제인 디클로페낙이 치사량 이상 검출됐다.

B씨는 A씨와 함께 약물을 투여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투여량은 일반적으로 치료시 필요한 양보다 적었다. 경찰에 따르면 간호조무사인 B씨는 해당 약물을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서 가져왔다. 해당 병원은 B씨가 근무했던 곳으로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 폐업했다.

B씨는 경찰에서 “A씨가 금전적 어려움을 호소해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적 불안을 호소하며 병원을 오가면서 경찰 조사를 받은 B씨는 타살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은 현장에 유서가 없는 데다 A씨 휴대전화에 극단적 선택을 암시한 정황이 없는 점에 주목했다. B씨가 A씨에게는 치사량 이상의 약물을 투약했으면서 자신에게는 치료 농도 이하를 사용한 점 역시 고려했다.

경찰은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작으며 B씨가 A씨를 속여 죽게 한 것으로 보고 지난해 10월 B씨를 위계 등에 의한 촉탁살인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촉탁살인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부탁해 살해하는 행위다. 경찰은 B씨를 지난 1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사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발생 6개월 정도 지난 이 사건은 지난 8일 A씨의 누나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면서 다시 화제가 됐다.
유가족은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A씨 유가족은 “부천 링거 사망 사건 피해자의 누나”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고 썼다. 이 사건은 유가족이 글에서 B씨가 링거로 투약했다고 써 링거 사망 사건으로 알려졌지만 경찰 관계자는 “어떤 도구로 투약했는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청원 글에 따르면 A씨는 3년 전 실수로 빚을 졌지만 누나의 도움으로 개인회생 처리해 안정을 찾았다. 이후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1년 넘게 기술을 배우고 있었으며 숨지기 3일 전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A씨의 누나는 “동생이 아버지에게 받은 월급으로 정해진 채무도 꼬박꼬박 변제하고 있었다. 금전적으로 힘들어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말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며 “B씨가 본인도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약을 투여했지만 링거 바늘이 빠져 중간에 깨어났다며 말이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타살 가능성을 강조했다. 또 “동생이 B씨와 자주 다퉜고 여자친구의 지나친 집착으로 주변 친구들에게 ‘(여자친구를) 당분간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동생이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해당 청원 글은 10일 현재 7000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는 “B씨 몸에 투약된 양이 치사량보다 적은 것으로 봐 위계 등에 의한 촉탁살인 혐의가 입증될 가능성도 있지만 우선 B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 전문가 감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중간에 링거가 빠졌다고 한 B씨 말이 사실이더라도 자살 방조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부천=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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