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똑같은 산별노조인데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2004년 9월 금속노조 두산중공업지회는 금속노조를 배제한 채 회사와 단독으로 단체협상에 합의했다. 합의된 단협에는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면 월차휴가를 폐지하고, 연차휴가를 조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금속노조는 지회장을 징계위에 회부했다. 산별노조에 가입한 이상 단체교섭권은 두산중공업이 아니라 금속노조에 있는데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더라도 근로조건이 나빠지면 안 된다'는 금속노조의 지침을 위반했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당시 강대균 두산중공업 지회장은 "대책도 대안도 없이 이상만 가지고 조합원을 불구덩이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며 징계 방침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개별 기업의 경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협상할 경우 조합원의 이익을 챙기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두산중공업은 연평균 23일씩 파업을 벌이는 바람에 2003년 상반기 해외 수주 실적이 한 건도 없는 등 심각한 경영 압박을 받고 있었다.

#같은 해 8월 오스트리아 운송노조는 오스트리아항공(AUA) 조종사노조가 요청한 파업계획을 승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파업에 들어가려는 조종사노조를 극구 말렸다. 당시 AUA조종사노조는 사측이 5~20%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통보한 데 반발해 파업할 방침이었다. 오스트리아 운송노조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UA) 같은 미국의 거대 항공사도 쓰러지는 등 전 세계 항공 업계가 불황을 겪는 판에 경영 사정이 극도로 악화된 AUA에서 파업이 일어나면 회사의 존폐가 우려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조원을 살리기 위해선 우선 회사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금속노조나 오스트리아 운송노조나 똑같은 산별노조다.

하지만 적어도 2004년의 경우엔 대응 방법이 너무 달랐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선 산별노조 덕분에 노사관계가 안정돼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한국에선 노노 갈등에다 경영 불안까지 가중되는 게 현실이다.

각 기업의 노조가 뭉쳐 하나의 거대한 단일노조로 구성된 산별노조의 힘은 막강하다.

힘은 쓰기에 따라 서로 윈-윈하는 선순환을 할 수 있다. 반면 공멸의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 조합원 4만 명이 넘는 현대자동차가 금속노조에 가입해 산별노조 시대가 열리고 있다. 산별노조의 강한 힘이 공멸이 아닌 공존을 위해 사용되길 기대한다.

김기찬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