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 2.2㏊ 불탔는데도 벌금 500만원… 솜방망이 처벌 강화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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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경북의 한 농촌에서 한 주민이 화목보일러 재를 버렸다가 산림으로 옮겨붙어 임야 2.2㏊가 불에 탔다. 피해 금액만 3000만원에 달했다. 소방차 출동 등에 따른 공익적 손실도 1억400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불을 낸 주민은 벌금 500만원의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6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천남리 산불 화재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잔불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6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천남리 산불 화재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잔불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1]

이처럼 산불을 내고도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드물다. 집행 유예(징역형)와 벌금형이 대부분이다. ‘솜방망이 처벌이 산불이 줄지 않는 가장 큰 이유’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최근 10년간 산불 4316건 발생, 피해면적 6999㏊ #입산자 실화가 36.1%로 최다, 발생은 3~5월 집중 #50~60㏊ 산림피해에도 실형선고는 한 건도 없어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발생한 산불은 4316건에 달한다. 이로 인한 피해 면적은 6999㏊로 서울시 넓이(6만525㏊)의 9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피해 금액도 2392억원에 이른다.

원인별로는 입산자의 실화에 의한 산불이 36.1%(건수 기준)로 가장 많았다. 이어 논·밭을 태우는 과정에서 발생한 산불 16.9%, 쓰레기 소각으로 인한 산불 13.8%, 담뱃불에 의한 산불 4.3%, 성묘객에 의한 산불 4.0% 등 순으로 집계됐다.

산불 발생 시기는 봄철에 집중됐다. 전체 산불의 58.6%가 3~5월에 발생했다. 겨울철인 12~2월에도 22.0%나 됐다. 여름과 가을인 6~8월과 9~11월은 각각 10.6%, 8.8%에 불과했다.

지난 4일 오후 강원 고성군 토성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5일 새벽까지 강풍을 타고 여러갈래로 나뉘어 번져 마을과 건물이 불타는 등 큰 피해를 입혔다. 시내의 건물 주변이 온통 불에 휩싸여 있다. [뉴스1]

지난 4일 오후 강원 고성군 토성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5일 새벽까지 강풍을 타고 여러갈래로 나뉘어 번져 마을과 건물이 불타는 등 큰 피해를 입혔다. 시내의 건물 주변이 온통 불에 휩싸여 있다. [뉴스1]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 623건 중 산불을 낸 사람이 검거된 경우는 283건이었다. 이들에 대한 처벌 가운데 9건만 징역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모두 집행유예로 실제 복역한 경우는 한 차례도 없었다.

산림을 50~60㏊나 태운 사람도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나머지는 벌금형 83건, 과태료 43건, 기소유예 32건, 내사종결 27건 등이었다. 훈방 등도 15건이나 됐다.

현행 산림보호법은 다른 사람의 산림이나 산림 보호구역·보호수에 불을 지르는 경우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본인 소유 산림에 불을 질러도 1년 이상이나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고의성이 인정된 경우다.

과실로 산림을 태운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이 대폭 낮아진다. 허가를 받지 않거나 산림 인접 지역(100m 이내)에서 불을 피우면 최고 13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지난 6일 진영 신임 행정안전부 장관이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을 찾아 피해를 입은 축사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진영 신임 행정안전부 장관이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을 찾아 피해를 입은 축사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산림당국과 자치단체는 법을 개정하거나 처벌 규정을 강화해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예방이 최선이라는 생각에서다. 산불로 인한 장비(헬기·소방차 등)와 인력 출동에 따는 비용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1월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산불로 86명이 숨지고 건물 1만4000여 채가 불아 탄 산불과 관련, 발화 책임이 있는 PG&E에 300억 달러(약 33조9000억원)의 배상책임을 물었다. 이 때문에 회사는 파산을 신청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법원은 산불을 내고 달아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의미 있는 선고를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송인권 부장판사)는 일반물건발화 혐의로 기소된 A씨(55)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11월 서울시 관악구의 한 야산 입구에서 낙엽과 신문지를 태우던 A씨(55)씨는 “불을 꺼라”던 시민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결국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도착하자 그대로 달아났다.

지난 6일 오후 강원도 속초시 장사동에서 소방관들이 잔불 제거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오후 강원도 속초시 장사동에서 소방관들이 잔불 제거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자칫하면 불길이 수목과 주택으로 옮겨붙어 무고한 생명과 재산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며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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