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나사 풀린 외교부의 잇단 실수…외교라인 전반 쇄신이 시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외교부가 보도자료에서 유럽 북부 ‘발틱’ 국가들을 ‘발칸’ 국가들로 표기했다가 주한 라트비아대사관의 항의를 받고 뒤늦게 정정했다. 페테리스 바이바스 주한 라트비아대사는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고, 다른 나라 대사들에게 외교부의 무성의를 한탄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외교 망신이 없다. 제3국 외교부처가 한국을 ‘동남아 국가’라 소개한 것이나 다름없다. 단순 착오라며 유야무야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 1년11개월간 숱한 외교적 실수와 결례를 저질렀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체코를 찾았을 때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로 표기했고, 지난달 문 대통령의 캄보디아 방문 때는 설명자료에 대만의 국가양청원 사진을 실었다. 문 대통령은 또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말로 인사말을 하는가 하면 음주가 금지된 이슬람 국가 브루나이에서 건배 제의를 해 논란을 낳았다. 지난해 10월 벨기에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선 문 대통령이 제때 승강기를 타지 못해 정상 단체사진 촬영에 불참하는 사태도 빚어졌다.

외교부와 청와대, 현지 공관에 경륜을 갖춘 전문가와 관료들이 포진하고 공조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갔다면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없다. 외교부와 청와대 관련 조직의 기강 해이와 역량 부족에다 지휘 라인의 무능까지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측근인 탁현민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은 “상대국이 말이 없는데 ‘결례’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상대국에 대한 결례”라고 강변했다.

지금 나라를 둘러싼 대외적 상황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 비핵화는 올스톱됐고 한·미 동맹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이고, 한·중 관계도 매끄럽지 못하다. 그런데 주무 부처인 외교부는 이런 현안들에 강단 있고 정교하게 대응하는 대신 초보적 수준의 실수를 연발해 기본적 역량마저 의심케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현 정부의 외교 난맥상은 청와대가 외교부를 밀어내고 핵심 현안을 직접 챙기는 ‘외교부 패싱’ 기조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는 경험이 풍부한 전문 외교관들을 ‘적폐’로 여겨 밀어내고 주요국 대사에 캠프 인사들을 임명했다. 이러니 일선 외교관들은 ‘큰 집(청와대)’만 쳐다보며 눈치껏 적당히 일하는 게 습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래선 제대로 된 외교가 불가능하다. 강 장관을 포함해 외교라인 전반의 쇄신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