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누가 대통령의 경제 현실 인식을 왜곡하는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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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호 34면

참으로 허망하다. “국가 경제는 견실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불과 열흘 만에 뒤집혔다. 어제 통계청에 따르면 올 2월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추락했다. 1년 전에 비해 생산은 1.4%, 소매판매액은 2% 줄었다. 설비투자는 무려 26.9%나 급감했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1월(-28.9%) 이후 10년여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경기 동행지수·선행지수는 9개월 연속 함께 떨어졌다. 통계를 만들기 시작한 1970년 이후 최장 기간 동반 하락이다. 앞으로도 경기가 녹록지 않을 것이란 신호다.

생산·소비·투자 동반 추락하는데 #대통령은 “국가 경제 견실한 흐름” #현실 가린 왜곡 보고 책임 물어야

그러나 대통령의 인식은 달랐다. 꼭 10일 전인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경제가 여러 측면에서 개선돼 다행이다.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증가했다”라고 말했다. 올 1월 생산과 소비가 살짝 반등한 것을 두고서 한 얘기였다. 이는 잘못된 진단이었다. 1월 설비 투자는 증가는커녕 1년 전보다 17%나 감소했다. 소비에 대해서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민간소비 증가세가 미약하다”고 공식 발표했다. ‘견실한 흐름’과는 거리가 멀다.

문 대통령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2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26만3000명이 증가해 작년 1월 이후 가장 많이 늘었다”고도 했다. 이 역시 그릇된 해석이었다. 나랏돈을 쏟아부어 60세 이상 단기 일자리를 늘렸던 것일 뿐이다. 경제의 허리인 30~40대 취업자는 24만6000명이나 감소했고, 15~29세 청년 확장실업률은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다. 경고 또한 사방에서 쏟아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성장이 중·단기적으로 역풍에 직면했다”라고 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1%로 낮췄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경제가 견실하다”고 했다.

대통령의 엇나간 경제 인식은 전부터 반복됐다. 고용 참사를 일으킨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했고, 벼랑에 몰린 자동차·조선 산업에 대해서는 “(기회가 왔으니)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력해서 성과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언론을 탓했다. 불안감이 배인 지표와 나라 밖으로부터의 경고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듯하다. “참모들이 왜곡된 통계와 해석으로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정부 수장이 경제 현실을 차갑게 인식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없다. 판단을 잘못해 물이 빠졌는데 노를 젓다간 애꿎은 노만 부러질 뿐이다. 현실을 가리는 왜곡 보고는 대통령 발언의 신뢰와 무게마저 훼손한다. 누가 무슨 이유로 왜곡 보고를 했는지 낱낱이 파헤쳐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게 경제를 살리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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