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 보조금 받고 다시 경유차 구입"…오히려 느는 경유차

중앙일보

입력

경기도 고양시의 한 폐차업체에서 조기폐차된 차들이 건물 옥상에 주차돼 있다. 천권필 기자.

경기도 고양시의 한 폐차업체에서 조기폐차된 차들이 건물 옥상에 주차돼 있다. 천권필 기자.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한 폐차업체.

1500여 대의 차량이 주차장을 꽉 채우고 있다. 조기폐차 되거나 수명을 다해 폐차된 차들이다. 조기폐차 스티커가 붙은 2005년식 차량에 들어가 키를 돌려보니 일반 차량처럼 금세 시동이 걸렸다.

“실제 성능검사를 해서 차량에 문제가 없어야 보조금을 받고 차를 조기폐차할 수 있어요. 그래서 5년 이상 탈 수 있는데 조기 폐차한다며 아쉬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폐차업체 직원이 차를 둘러보며 설명했다.

조기 폐차란 일반 폐차와 달리 정상운행이 가능한 노후차를 조기에 폐차할 경우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폐차업체에서 조기폐차된 차들이 주차돼 있다. [업체 제공]

경기도 고양시의 한 폐차업체에서 조기폐차된 차들이 주차돼 있다. [업체 제공]

요즘 이 업체에는 밀려드는 조기 폐차 신청 때문에 일반 폐차를 받기 어려울 정도다.
하루에 100대까지만 폐차가 가능하지만, 이날도 조기폐차로만 80여 대가 들어왔다. 직원들은 주차할 자리가 없다 보니 옥상으로 차를 올렸다.

폐차장에는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온 딜러들이 들어온 차들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실제 이날 조기 폐차로 입고된 두 대는 들어오자마자 이집트 딜러에게 팔렸다.

직원은 “대부분 국가에서 환경 규제가 강화되다 보니 요즘에는 주로 아프리카 가나나 이집트에서 온 딜러들이 돈다발을 들고 다니면서 엔진 등 원하는 부품을 사서 가져간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폐차업체에 차량에서 분리한 엔진이 가득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경기도 고양시의 한 폐차업체에 차량에서 분리한 엔진이 가득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노후차 운행 제한에 조기폐차 관심 급증 

경기도 고양시의 한 폐차업체에서 폐차된 차량을 분해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경기도 고양시의 한 폐차업체에서 폐차된 차량을 분해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조기 폐차된 차량을 둘러보니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대부분이었다. SUV 차량주들은 고철값과 조기폐차 보조금을 포함해 200만 원 안팎을 받게 된다.

이현균 인선모터스 이사는 “지난달부터 한 달 동안 1500대가 서류를 접수했는데, 이 중 530대만 조기 폐차 처리됐고 1000대가량은 여전히 대기 중”이라며 “트럭은 생계형이 많기 때문에 조기 폐차하지 않고 끝까지 타는 경우가 많아 50대 중 1~2대꼴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렇게 조기 폐차 수요가 급증한 건 정부가 경유차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노후 경유차 퇴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 중에서 경유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11%에 이른다.
사업장(40%)과 건설기계(16%), 발전소(14%)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하지만, 범위를 수도권으로 좁히면 경유차의 미세먼지 배출 비중은 22%로 1위를 차지한다.
경유차가 도시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에 정부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막대한 보조금 예산을 투입해 노후차 28만 대를 조기 폐차했다.
올해에는 예산을 더 늘려 15만 대가량을 조기폐차할 계획이다.

특히 지난달 미세먼지 특별법 시행 이후 노후 경유차에 대한 규제를 본격화하면서 조기폐차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 시 5등급 차량으로 분류된 269만 대의 노후차는 운행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비상저감조치 발령 때 2.5t(톤) 이상의 수도권 등록 차량만 서울 시내 운행이 금지된다.
하지만, 당장 6월부터는 5등급 전체 차량의 수도권 운행이 제한될 예정이다. 적발 시 1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28만대 조기폐차했는데…경유차 131만대 늘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지만,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경유차 등록 대수는 최근까지도 꾸준히 늘고 있다.
정부가 최근 4년 동안 28만 대를 조기 폐차했지만, 경유차 등록 대수는 862만 대(2015년)에서 993만 대(2018년)로 오히려 131만 대나 증가했다.

미세먼지 특별법이 시행된 지난달에도 경유차 등록 대수는 997만 5600대로 전 달보다 5000대 이상 늘었다.
정부의 노후 경유차 퇴출 정책이 전체 경유차 감소로는 이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노후 경유차를 조기폐차해도 보조금에 돈을 얹어서 중고나 새 경유차를 사는 차주들이 적지 않았다.

최근 노후 경유차를 조기폐차하고 경유 SUV 신차를 구매한 김호정(39) 씨는 “친환경차는 보조금을 생각해도 가격이 비싸고, 차 크기와 연비 등을 생각하다 보니 또 경유차를 사게 됐다”고 말했다.

업무용 승합차를 조기폐차한 장영호(34) 씨도 “큰 차는 디젤밖에 없는 데다가 연비도 낫고 기름값도 싸니까 또 경유차를 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조기폐차 보조금에 돈을 더 보내 중고차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운동연합 대표는 “경유차가 계속 늘어난다는 건 결국 경유차를 퇴출하는 게 아니라 신형 또는 중고 경유차로 교체해주면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 경우 대기오염물질 삭감량이 적어 사업 효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LPG 트럭 구매시 400만 원 지원” 

지난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미세먼지 줄이는 LPG 화물차 신차구입 지원사업 1호차 전달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미세먼지 줄이는 LPG 화물차 신차구입 지원사업 1호차 전달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이에 환경부는 노후차주들이 경유차 대신 대기오염물질 배출이 적은 전기차나 LPG(액화석유가스) 차로 갈아탈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누구나 LPG 차량을 살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고, 최근에는 노후 경유차를 조기폐차하고 LPG 1t 화물차를 구매하는 경우 신차 구매비 일부(400만 원)를 지원하는 지원책도 새로 내놨다.

김법정 환경부 대기환경정책관은 “신차 구매부담을 낮추기 위해 LPG 화물차 신차 구매 지원 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할 계획"이라며 "향후 수요가 급증할 저공해 차에 대해서도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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