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폭력 당했는데 남편과 통화 요구···황당한 검찰·경찰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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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기관의 성범죄 수사 과정 중에 발생하는 2차 피해에 대해서 피해자들이 국가인권위에 진정 접수한 건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픽사베이]

수사기관의 성범죄 수사 과정 중에 발생하는 2차 피해에 대해서 피해자들이 국가인권위에 진정 접수한 건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픽사베이]

수사기관의 성범죄 수사 과정 중에 발생하는 2차 피해에 대해서 피해자들이 국가인권위에 진정 접수한 건이 최근 5년간 50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검·경 수사 중 성폭력 2차피해 인권위 접수 5년새 50건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7일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검찰과 경찰의 성범죄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봤다고 진정 접수한 건수는 2014년 1월~ 2019년 3월 기간 중 총 50건이다. 이중 검찰에 의한 피해는 12건, 경찰에 의한 피해는 38건이다.

피해자 통계를 살펴보면 전체 50명 중 여성은 47명, 남성 1명, 미상 2명이다. 가해자는 전체 50명 중 남성이 31명, 여성 7명, 미상은 12명으로 드러났다.

자료에 따르면 인권위가 인권침해로 인정해 권고 조치를 한 사례로 2017년 경찰서 내 성희롱 수사 중에 발생한 2차 피해도 포함돼 있다. 2017년 경찰서 내 성희롱 조사 과정 중 청문감사관이 피해자 남편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남편과의 통화를 요구했으며 남편 근무지 정보를 사적으로 확인했다. 인권위는 이를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해당 관할 경찰청장에게 소속 청문감사담당관 및 청문감사담당관실 직원 대상으로 직무교육을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성폭력 피해 당시 상황을 재연하도록 한 경우도 있다. 검찰은 2017년 이모(48·여)씨에게 두 차례에 걸쳐 직접, 그리고 대역에게 지시하는 방식으로 당시 상황을 재연하도록 요구했다. 인권위는 검찰총장에게 피해자가 직접 재연에 참여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신설하도록 지난 10일 권고했다.

인권위는 신고가 접수되면 피진정인에게 서면진술서와 자료 요청을 하며 진정인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한다. 필요에 따라 경찰서 등 CCTV를 확인하는 절차 등을 거치기도 한다. 조사가 완료되면 소위원회에서 안건 심의를 의결해 최종적으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한다.

인권위 관계자는 “일반 진정사건과 같은 절차에 따라 조사를 진행하되, 사건의 특수성 및 피해자의 상황을 고려하고 있다”라며 “다만 인권위에 강제 수사권이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증거 자료 확보에 일정 부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실 제공]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실 제공]

인권위에 접수되는 성폭력 수사과정 중 2차 피해 진정 건수는 전체 피해 중 일부에 불과하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여가부 산하에 있는 성폭력피해상담소는 수사과정 중 2차 피해가 발생할 경우 담당 수사관 교체를 요청하거나 경찰서 청문감사실에 인권침해 조사를 의뢰한다"라며 "피해자가 희망할 경우 인권위 진정서 작성 등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상담 중 심각하다 여겨지는 일부 건수만 인권위로 넘겨지는 것이므로 실제 2차 성폭력 피해는 인권위 통계보다 훨씬 크다. 이어 여가부 관계자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우리부에 접수된 수사과정에서 발생한 2차 피해 민원은 확인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신보라 의원은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검찰과 경찰에게 2차 피해를 당하게 되면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라며 “경찰이 경찰 내부의 2차 가해 혐의를 조사하다 보면 제 식구 감싸기가 될 수 있으니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 의원은 “성희롱·성폭력 컨트롤타워이자 성폭력상담소를 관리·감독하는 여가부에서 제대로 된 통계나 피해자 보호 체계가 없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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