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카카오톡, 그 ‘키득거림’의 신성함에 대하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후세의 사가(史家)들은 아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개인들이 그물망처럼 실시간으로 엮여진 첫 시대로 기록할 것이다. 덧붙여, 오늘의 한국 사회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전국민이 카카오톡이라는 특정 서비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서로와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었다고 기록될 것이다. 내가 소속된 단톡방(단체 대화방)의 숫자는 수십, 아니 수백을 헤아리며, 이들은 가족과 일과 친구들과 때로는 알지 못하는 이들의 무수한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류가 이토록 이어져 있었던 적이 없었으며, 이토록 피할 수 없는 소통의 포화상태를 산 적이 없었다.

추악해지기 쉬운 단톡방 #그럼에도 존재의 다양성이 #피어나는 소중한 공간 #국가는 사적 공간 보호해야

여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카카오톡의 결정적인 매력은 그것이 끊임없이 다중적 주체로서의 나를 상기시킨다는 점이고, 마치 곡예를 하듯 한 역할에서 다른 역할로 스위치를 껐다 켜는 것처럼 옮겨 다닐 수 있고 옮겨 다녀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어느 순간 휴일에도 업무지시하는 직장상사에서 사춘기 아이에게 절절매는 부모로, 순진한 남편에서 닳고 닳아 처세에 능한 직장동료로, 우리는 지극히 복잡하고 다양한 페르소나들을 변주할 수 밖에 없다.

공존하는 페르소나들이 카카오톡을 이해하는 첫 열쇠라면, 이러한 페르소나들이 동시에 충돌하는 공간에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키득거림’이야말로 카카오톡 성공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한다. 당신이 근엄한 회의장에서 심각하고 사무적인 표정을 지으며 단톡방에서 누군가와 실없는 농담을 나누었거나, 한 달 후의 중요하지 않은 저녁 약속을 잡아본 적이 있다면 이런 키득거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키득거림을 서로 나누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외없이 귀엽고도 엉뚱한 카카오톡 이모티콘들이 성공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매달 그런 이모티콘들이 22억개가 발송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키득거림의 공간이 마냥 밝고 환한 곳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최근 들어 점차 알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곳은 사람들이 평소 억눌려왔던 욕망이 체면과 도덕의 억제를 뚫고 터져나오는 공간이며, 때로는 미움과 증오가, 혹은 편견과 절망이 배설되는 곳이기도 하다. 비슷한 취향과 색깔과 편견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취향과 색깔과 편견을 더 극단적으로 키워가는 곳이라는 점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신문과 방송을 온통 도배했던 젊은 남성 연예인들의 명백한 범죄행위는 어떤 의미에서 놀랍지 않을 수도 있겠다. 입에 담기에도 힘든 온갖 불법행위가 놀랍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버젓이 단체대화방을 통해 또렷하고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것이 놀랍지 않은 이유는 단체대화방에 축적된 온갖 오염물들이 우리 문화의 스냅샷처럼 퇴적되어 있을 것이며, 그것들을 향한 온갖 삐뚤어진 키득거림들이 별로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세월에 절대 풍화(風化)되거나 잊혀지지 않는 디지털 양식으로 기록된 대화방의 내용물들은 누군가의 전화기에서 저장되었다가 이들의 운명을 결정할 엄중한 증거로 활용될 것이다. 우리가 본 사건을 통해 깨우친 것이 있다면 카카오톡의 키득거림이야말로 무겁고 엄중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매우 당혹스러운, 놓치기 쉬운 장면도 있었다. 그것은 수사과정에서 확보된 피의자의 휴대폰에 저장된 여러 단체대화방 중, 아마 ‘직장동료’들의 대화방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의 내용까지 세상에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개그맨 김준호씨와 배우 차태현씨가 해외에서 내기 골프를 쳤다는 내용이 경찰에 의해 발표되었고, 그것이 범법 행위인지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언론에 의해 보도되었으며 이들은 각자의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도박을 옹호하려는 것도, 그들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이어서 무죄라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경찰이 임의제출 받은 피의자의 전화기에서, 애초 수사 목적과는 전혀 무관한 사항의 추가적인 범죄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카카오톡의 모든 키득거림들을 먼지 털듯이 터는 것보다는 훨씬 부지런하고 섬세한 과정이야 한다는 말이다. 피의 사실을 초기에 공표하고 이를 언론이 부지런히 받아서 ‘터뜨린 것’은 사소한 덤에 불과했다.

더나아가 나는 카카오톡의 ‘키득거림’들이 지니는 온갖 추악하고 어두운 속성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어떤 신성함 또한 깃들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견디기 힘든 근엄하고 진지한 하루하루 일상을 그래도 우리가 버틸 수 있는 것은, 대개의 경우 우리 존재의 역설적 다양성들이 빚어내는 실없는 농담과 키득거림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적 공간을 국가가 법과 도덕의 잣대로 환하게 비추며 멸균시키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범죄자를 찾아내어 엄벌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인 것 만큼이나 개인들이 소통하고 웃고 떠들고 지질하게 굴 권리를 보장하는 것 또한 국가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