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북한 “트럼프 스냅백 제안” 미국 “하노이 결렬은 트럼프 전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달 2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제재 해제 뜻을 밝혔으나 참모진의 강경 발언으로 무산됐다고 주장한 데 대해 미국 측 외교 소식통이 26일 “사실과 다르다”고 중앙일보에 전해왔다.

최선희 “볼턴 등 반대로 결렬” 주장 #미국 “비건 방북 뒤 협상 전면 수정 #북한 아직도 미국에 대해 잘 몰라”

앞서 연합뉴스·뉴시스 등 한국 통신사는 25일 최선희 부상의 비공개 기자회견 발언문을 통해 확인한 내용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스냅백(snapback)’ 조항을 추가해 북한에 제재를 풀어준 뒤,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제재를 복원하는 방안이 회담장에서 오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같은 방안은 회담장에 배석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게 최선희 부상 측의 주장이다. 제재를 해제하되 위반 행위가 있으면 제재를 부활하는 게 스냅백 규정이다.

미국이 26일(현지시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시다발로 요격하는 지상발사 요격미사일(GBI)을 시험 발사하고 있다. 미국은 이날 세계 최초로 GBI 동시다발 요격 시험에 성공했다. 미국이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시기를 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진 유튜브 캡처]

미국이 26일(현지시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시다발로 요격하는 지상발사 요격미사일(GBI)을 시험 발사하고 있다. 미국은 이날 세계 최초로 GBI 동시다발 요격 시험에 성공했다. 미국이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시기를 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진 유튜브 캡처]

관련기사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복수의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하노이 회담은 미국 참모진 1~2명의 반대로 돌연 결렬된 것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테이블에선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지만, 결렬에 무게추를 두고 협상에 임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미국의 핵심 당국자에게 최 부상 주장에 관해 물어보니 미국은 여전히 같은 입장”이라고 말했다. 스냅백 조항을 전제로 한 방안이 논의됐을 가능성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으나 이 역시 협상 전략의 하나일 뿐 협상의 목표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다른 미국 측 외교소식통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가 (2월 6~8일) 평양을 방문한 뒤부터 미국은 협상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며 “비건 대표가 미 행정부 전반의 지혜를 구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지휘로 하노이 회담 전략을 짰다”고 말했다. 최 부상 주장대로 볼턴 보좌관이나 폼페이오 장관 개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가면서 대북 제재 해제에 반대해 회담이 결렬됐다는 게 아니라는 반박이다.

북·미 회담 관련 사정에 정통한 서울의 외교소식통도 “개인이 좌지우지한 회담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영변 비핵화에 대한 정의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미 정부 대북 관련 부처들 모두 하노이 회담에선 유의미한 결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했으며 대신 향후 계속 협상을 이어가자는 입장을 정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한국 통신사들의 보도에 따르면 최 부상은 “회담에서 우리가 현실적인 제안을 제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에 ‘제재를 해제했다가도 조선(북한)이 핵 활동을 재개하면 제재는 가역적’이라는 내용을 포함하면 합의가 가능할 수 있다는 신축성 있는 입장을 취했다”며 “미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은 기존의 적대감과 불신의 감정으로 두 수뇌분 사이의 건설적 협상 노력에 장애를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최 부상이 직접적으로 볼턴과 폼페이오를 지목해 회담 결렬의 책임자로 비판한 것을 놓곤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과 현재 미국 정부에 대한 판단력 부족을 드러낸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