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김학의 사건 재수사’ 조응천·채동욱은 왜 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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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법의 잣대는 하나여야 한다. 법이 대상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면 따르기도 어렵지만, 마음속에서 승복할 수 없게 된다. 글자가 적힌 종이일 따름인 공소장과 판결문이 힘을 갖는 것은 국민이 승복하기 때문 아닌가. 법을 다루는 곳에 서면 그곳이 어디든 결정 하나, 표현 하나에도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한쪽은 빼고 한쪽만 넣은 수사 권고 #납득하기 힘든 ‘이중 잣대’ 설명해야

그제 나온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의 김학의 사건 관련 수사 권고를 납득하기 힘든 것은 그래서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새로운 혐의(뇌물)로 수사하도록 권고한 것은 그간 부실 수사가 이어졌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2013, 2014년 두 차례의 수사와 차관 인사 검증 과정에 대해 불거진 의혹들도 검증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1차 수사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던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과 이중희 전 민정비서관을 콕 집어서 ‘경찰 수사 방해’ 혐의(직권남용)로 수사 권고 대상에 넣은 것은 어떤 측면에서든 이해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대상에 포함하고 포함하지 않는 기준이 엄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검찰과거사위 측은 곽 의원 등에 대해 “김학의 사건을 내사하던 경찰을 질책하거나 경찰청 지휘라인을 부당하게 인사 조치하는 등 수사를 방해했다”며 “이런 혐의가 당시 민정수석실 공무원과 경찰 등의 진술로 소명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 초기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곽 의원 등과 함께 일하며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비리 감찰을 담당했던 조응천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사 권고 대상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또 채동욱 전 총장 등 당시 검찰 지휘 라인은 왜 대상에서 빠졌는가.

당장 곽 의원과 조 의원의 당적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단순히 “조 의원 등 관련 의혹에 대해선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설명만으론 부족하다. 특히 곽 의원과 조 의원, 이 전 비서관 모두 “경찰 수사를 방해한 적이 없다. 오히려 경찰이 김 전 차관 첩보를 확인해 주지 않다가 차관 인사 발표 후 뒤늦게 얘기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당시 경찰을 질책한 것도 ‘김학의 수사’가 아니라 ‘허위 내지 지각 보고’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입장에 서 있는 세 사람 중 두 명만 대상에 포함한 데 대해 “표적 수사”란 반발이 나오고 있는 건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당사자인 곽 의원은 자신이 문재인 대통령 딸의 해외이주 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지어 보복성 수사 지시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김학의 사건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수사 과정 역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부실했다. 검찰은 2013년 3월 28일부터 6월 19일까지 경찰이 김학의 사건과 관련해 신청한 통신·압수·체포 영장과 출국금지 신청 등을 모두 10차례 기각했다. 당시 채동욱 총장 등 검찰 지휘 라인이 경찰 수사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이 부분을 수사 권고 대상에 넣는 것이 ‘과거의 과오를 바로잡는다’는 검찰과거사위 도입 취지에도 맞았던 것 아닌가.

이제라도 검찰과거사위가 한쪽은 들어가고, 한쪽은 빠진 이유가 무엇인지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검찰 역시 수사 권고 내용을 객관적으로 검토한 뒤 공정한 기준에 따라 수사에 나서야 한다. 부실 수사를 시정하기 위한 재수사가 ‘이중 잣대’로 염증만 키운다면 국민을 두 번 실망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