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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시즌 MVP 이정현 “2년 전 상 놓친 게 전화위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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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이 MVP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뉴스1]

이정현이 MVP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뉴스1]

“2년 전에 MVP를 받을 걸로 기대했는데, 내 착각이었습니다. 그때 마음을 비우며 성숙해진 게 도움이 된 것 같네요.”

프로농구 KCC의 국가대표 슈터 이정현(32)은 정규시즌 MVP 수상 소감을 밝히며 2년 전 경험을 이야기했다. 간절히 바라고도 뭔가를 이루지 못했던 경험이 오히려 스스로를 더욱 성장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게 이정현의 고백이다.

이정현은 20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18-2019 SKT 5GX 프로농구 정규경기 시상식에서 MVP를 받은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솔직히 KGC인삼공사에서 정규리그 우승을 이룬 2년 전에 MVP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내 착각이었다. 그때 상을 놓친 이후 내 머릿속에서 MVP라는 상을 지웠다. 그 대신 더 좋은 선수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는데, 그게 오늘의 영광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이정현은 2년 전 KGC인삼공사에서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당시 MVP는 동료 센터 오세근에게 돌아갔다. MVP 등 상에 대한 욕심을 잊고 절치부심한 이정현은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보이며 MVP로 우뚝 섰다. 기자단 투표에서 총 109표 중 76표를 받았다. 지난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정규경기 1위 또는 2위 이외의 팀에서 MVP가 나온 건 지난 2009년 7위팀(당시 안양 KT&G) 소속으로 영예를 안은 주희정(은퇴)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이정현은 “팀에서 나를 위해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 감독님께서 내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술을 만들어주셨고, 선수들도, 지원스태프도 내 위주로 희생했다. 그런 부분이 오늘의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면서 “나 혼자 받은 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믿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한 번 더 머리를 숙였다. 다음은 이정현 일문일답.

 -수상 소감은.
“부족한 저를 MVP로 뽑아주셔서 감사드린다. 조금 더 성숙하고 발전하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비시즌에 힘들었는데.
“팀에서 비시즌에 거의 운동을 못해서 시즌 초반에 헤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팀에서 나에게 많이 맞춰주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덕분에 중반 이후부터 좋은 경기력이 나왔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발전하려고 노력한다.”

-상을 많이 받았지만 MVP는 처음인데.
“사실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2년 전에 받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는데, 그때 못 받으면서 MVP라는 상은 내 머릿속에서 지웠다. MVP보다는 좋은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게 지금 이런 상을 받은 계기가 된 것 같다. 아직도 조금 얼떨떨하다.”

-2년 전에 못 받아서 서운했나.(당시에는 오세근 수상)
“많이 서운했다. KGC에 있을 때 정규리그 우승했을 때 제가 받을 줄 알았는데, 제 착각이었다. 그때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 뽑아주셔서 감사드린다.”

-이번에는 얼마나 기대했나.
“주위에서 MVP를 받을 사람이 없다며 기대감을 키워주셨다. 아예 올 시즌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좀 더 높은 순위, 좀 더 좋은 순위로 올라가는 게 목표였다. MVP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현대 시절 포함 KCC 선수가 MVP를 받은 게 20년 만인데.
“좋은 팀에 데리고 와주신 구단주님과 단장님, 명예회장님께 감사드린다. 명문팀에서, 그것도 20년 만에 좋은 상을 받았다고 하니 더 기쁘다. 나 혼자 노력한 결과는 아니다. 나를 위해 많은 분들이 노력하셨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위주로 전술을 짜주신 감독님과 동료들, 지원스태프까지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경기를 뛸 때 믿음이 가는 선수가 되고 싶다.”

-국내 선수가 공격을 끌고 가는 건 특별한 상황인데.
“농구는 5명이 다 같이 해야 강해진다. 올 시즌에 그런 부분이 많이 증명이 된 것 같다. 우리 팀은 나와 브라운이 2대2 게임을 하면서 찬스를 보는 스타일을 많이 한다. 브라운은 사실 1대1에 강한 선수라 시즌 초반에는 삐걱대는 부분이 있었는데,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며 문제를 해결했다. 워낙에 외국인 선수 비중이 크기 때문에 국내 선수가 그 비중을 나눠가질 수 있다면 더 좋은 팀이 될 거라 생각했다. 나와 브라운의 투 맨 게임도 있지만, 송교창 선수가 부담을 나눠 짊어지면서 좀 더 편하게 뛸 수 있었다. 팀에서 믿어주셨기 때문에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했던 게 농구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국내 선수로 1옵션을 맡는 게 부담도 큰데.
“질 때는 내 탓인가 싶어서 괴로움도 컸다. 주위에서 ‘편하게 농구하라’고 격려해주셔서 부담감을 덜 수 있었다. 대신 책임감을 키웠다. 이번 시즌이 워낙 빠듯했기 때문에 부상도 많고 모든 선수들에게 힘들었다. 경기 일정이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릴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트리플 더블을 해본 적이 없는데,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그걸 해낼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그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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