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자율권 vs 학생 빼가기…일반고에서 자사고 전학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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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서울 중구 이화여자고등학교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2019 서울자사고 연합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자사고 입시 관련 강의를 듣고 있다.[뉴스1]

서울지역 일반고인 A고는 최근 황당한 일은 겪었다. 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도 안 된 1학년 신입생이 인근에 있는 자율형사립고인 B고로 전학시켜달라고 요청해서다. 이 학생은 입학석차로 전교 10등 안에 드는 상위권 학생으로 전국단위 자사고에 지원했다 탈락해 일반고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일부 자사고 중졸 전·편입 허용 #서울시교육청 특별장학 후 주의 조치 #2017년 자사고 전입생 620명 달해

A고는 B고에서 편법을 사용해 일반고의 우수 학생들을 빼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보통 자사고의 전·편입생 모집에 응시하려면 재학 중인 학교에서 고교재학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이 학생은 A고에 재학증명서를 요구한 적이 없어서다. A고 측은 “B고 뿐 아니라 자사고에서 일반고의 우수학생을 데리고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서울시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20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B고에서 전·편입생을 모집할 때 2·3학년은재학증명서를 요구했지만, 1학년은 ‘중학교를 졸업한 자’로만 자격을 명시하고 재학증명서를 아예 요구하지 않았다. 이럴 경우 학생은 재학 중인 학교 몰래 자사고에 지원하는 게 가능하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이 지난주 B고를 대상으로 특별장학을 실시하고, 규정 위반에 대해 ‘주의’ 처분을 내렸다. 학교 관계자들은 입학 요강 담당자의 실수였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이 재학 중인 학교 몰래 자사고에 지원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신입생 모집요강을 실수로 전·편입생 모집요강에 올려놨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해당 학교에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할 말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서울교육청에는 B고와 비슷한 내용의 민원이 여러 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장학 결과 서울시의 또 다른 일반고인 C고와 D고에서도 상위권 학생들이 입학 직후 자사고로 전학한 게 확인됐다. 이 학교들도 B고와 비슷한 방법으로 우수한 학생을 전학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교육청 전경.[뉴스1]

일반고에서 자사고로 전학하는 학생 수는 서울에서만 연간 수백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지난 2017년 자사고 전입 현황을 조사한 결과 한 해 동안 자사고로 전입한 학생은 모두 620명이었다. 이대부고가 64명으로 가장 많고, 한대부고(52명), 배재고(44명), 이화여고(43명), 현대고(43명) 등이 뒤를 이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모든 학생이 일반고에서 전학 갔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전입생 중에 일반고 학생이 가장 많을 것”이라며 “자사고에 지원했다 탈락한 학생 중에 학년 초에 자사고 전학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자사고에서 학생들을 가로챈다는 비판과 학생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서울 일반고의 한 교장은 “자사고들이 평소 인근 일반고에 재학 중인 우수학생들의 명단을 갖고 있다가 학교에 결원이 생기면 학부모들을 개별 접촉해 학생들을 빼가는 건 예전부터 있었던 일”며 “자사고에 우수한 학생이 몰리는 상황에서 학기 중에 상위권 학생들까지 자사고로 전학 가면 일반고 황폐화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서울 한 자사고 교사는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공부할 권리가 있다”며 “위법한 행동으로 학생들을 데려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학생들의 선택까지 막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반박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