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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대입 자소서 글자수 줄이고 ‘지원동기’ 묻는다…"자소설 성행" 우려

중앙일보

입력

대입 수시모집 입시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이 입시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대입 수시모집 입시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이 입시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대학 입시 부담을 줄인다는 목표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입 자기소개서 개편안 밑그림이 드러났다. 자기소개서 문항을 4개에서 3개로 통합하고 글자 수도 줄이는 방안이다. 문항에 '지원 동기'를 포함하고 교외 활동은 쓰지 못 하게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19일 대학들에 따르면, 4년제 대학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최근 대학 입학사정관 등을 대상으로 자기소개서(자소서) 개편안을 공개했다. 앞서 지난해 8월 교육부는 입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자소서를 간소화하기로 하고 대교협에 관련 연구를 위탁했다.

 대교협 연구진이 발표한 개편안은 자소서 문항을 통합해 재구성하는 것과 글자 수를 줄이는 내용이 골자다. 현행 자소서는 모든 대학이 공통으로 쓰는 3개 '공통문항'과 대학별 '자율문항' 1개 등 4문항 5000자 이내로 구성돼있다. 연구진은 이를 공통문항 2개와 자율문항 1개, 3100자 이내로 줄였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공통문항 1번에서 지원 동기를 묻는다는 점이다. 기존 1번 문항은 '학업에 기울인 노력'을 묻고 2번 문항은 '교내 활동'을 물었는데, 이를 통합하면서 지원하는 분야와 관련된 학습과 교내활동을 묻는 문항이 됐다.

 자소서에 쓸 수 있는 내용의 범위가 교내로 한정된다는 점도 주요 변화다. 기존에는 학교장이 허락한 교외 활동은 쓸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는데 개편안에는 교내 활동만 쓰도록 했다. 이밖에 학교나 학급 등 공동체에 기여한 활동을 쓰라는 문항도 등장했다.

글자 수 준다고 입시 부담 줄어드나

 대학과 입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입시 부담 경감과는 별 관계가 없는 개편안"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도권 대학 입학처 관계자는 "두 문항 2500자를 하나로 합쳐 1500자만 쓰게 한다고 부담이 줄겠느냐"며 "글자 수가 준 만큼 핵심 내용만 압축해야 하는 부담이 커져 기존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SKY 캐슬' 속 차민혁(김병철) 교수는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박영재(송건희)의 자기소개서를 대필해 준다. [JTBC]

드라마 'SKY 캐슬' 속 차민혁(김병철) 교수는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박영재(송건희)의 자기소개서를 대필해 준다. [JTBC]

 자소서를 소설처럼 꾸며 쓰는 이른바 '자소설'이 더 성행하고 관련 사교육이 늘어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연구소장은 "1학년 때부터 지원 동기에 맞춰 공부하고 교내 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되겠는가"라며 "결국 지원 학과에 맞춰 자소서를 써주는 업체들이 호황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진 대학미래연구소장은 "대입 간소화는 글자 수 줄이기가 아니라 지원자의 노력을 줄여줘야 하는 것"이라며 "개편안은 한정된 글자 수 안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어 부담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개편안 연구 책임자인 김무봉 동국대 교수는 "입시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이지만 문항이 너무 복잡하다는 등의 문제가 제기된 것도 알고 있다"며 "향후 교육부 검토 등을 거치면서 문장이 좀 다듬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개편안은 현재 고교 1학년이 입시를 치를 2022학년도부터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학생 부담 경감을 위해 내년에 조기 도입하는 방안도 제시했지만 송근현 교육부 대입정책과장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문제라 쉽게 결정할 수 없다. 의견 수렴을 거쳐 2022학년도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자소서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학생이 자신의 학교생활을 돌아보고 강점을 어필한다는 좋은 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대필' 등 외부 개입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자소서의 가장 큰 문제"라며 "글자 수를 따지는 교육부가 번지수를 잘못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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